"그동안 美術갖고 잘 놀았다, 이젠 위로를 그리겠다"

  • 홍콩=이태훈 기자

입력 : 2013.05.22 23:57

['일본의 앤디 워홀' 무라카미 다카시]

-직원 고용해 작품 제작
르네상스 땐 집단 창작했다, 나는 지극히 정상적 예술가… 내 작품 비싼 이유? 나도 궁금

-2011 대지진 이후 난 변했다
예전엔 서구미술 패러디 즐겨… 지금은 지진 상처 다독이고파, 설령 그게 '가짜 위로'라도…

한쪽에선 '변태 오타쿠 대마왕', 한쪽에선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 부른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일본 작가 중 활동이 가장 두드러지는 건 분명하다. 무라카미 다카시(51)를 21일 그의 개인전이 열리는 갤러리 페로탱 홍콩 분점에서 만났다.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는 평가를 좋아하나.

"아니. 그는 거장이고 난 작고 힘없는 예술가일 뿐이다. 가장 큰 차이는 그는 미국인이라는 것. 미국은 세계경제와 세계 미술계에서도 수퍼 파워다. 일본은 수퍼 스몰, 힘도 없다. 그게 그와 나의 엄청난 차이(super different)다."

―작년 생존 일본 작가 중 최고가(370만달러)로 작품이 팔렸다. 엄살 아닌가.

"전혀. 생각해 봐라. 난 영화도 만드는데, 일본어로 찍은 영화는 망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영어로 작업하는 사람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21일 홍콩 갤러리 페로탱에서 무라카미 다카시가 자기 자신을 희화화한 그림 앞에서 코믹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림 제목은 미정.
21일 홍콩 갤러리 페로탱에서 무라카미 다카시가 자기 자신을 희화화한 그림 앞에서 코믹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림 제목은 미정. /홍콩=이태훈 기자
―당신의 창의력은 어디서 나오나.

"살인적 집중력과 성실성? 일본의 스튜디오에서 100명 정도의 직원이 낮밤 교대로 일한다. 못 견디고 나가는 친구들도 많다. 물론 나는 언제나 그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공장 작품'이란 비난도 있다.

"예술가가 혼자 그림 그린 건 근래 200년 정도의 현상이다. 다빈치 같은 르네상스 화가들, 그전의 동서양의 화가들, 모두 거장 한 사람 아래 집단 창작이다. 내가 정상이다."

무라카미는 200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현대미술관(LAMOCA)에서 일본 오타쿠(한 분야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사람)문화를 현대 미술로 풀어낸 '수퍼플랫(superflat)'전으로 주목을 얻었고, 루이뷔통과 협업하면서 대중적 인지도가 더 올라갔다.

―작품에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끌어들인 건 왜인가.

"그런 스토리는 늘 선과 악, 영웅과 반영웅이 불분명하고 결말이 혼란스럽다. 그런 혼란이 패전국 일본의 정체성이고, 일본의 현실은 그 반영이다.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말하기 힘든 세계, 혼란으로 가득한 세계, 내 그림은 그걸 그린다."

―성인용 만화에 나오는 자위하는 남자, 거대한 가슴의 여신상 같은 이미지로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평가도 극단적이다.

"심지어 오타쿠들도 나를 싫어한다. 가짜(fake) 오타쿠라고. 오타쿠는 뭔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건 그걸로 OK. 더 모르겠는 건 내 작품이 비싸게 팔린다는 사실이다. 도무지 모르겠다."

―아시아인으로서 현대 미술에서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 목표는 뭔가? 오타쿠답게 우주 정복?

"솔직히 그동안은 서구 미술 시장을 갖고 노는 걸 즐겼다. 하지만 2011년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이후 목표가 바뀌었다.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걱정 마. 엄마 아빠는 천국으로 가셨단다' 하고 위로해줘야 한다. 내 새로운 애니메이션 '해파리 눈(Jellyfish eyes)'은 그런 시도다. 물론 원시종교적 거짓말이지. 하지만 '넌 혼자가 아냐' 위로의 판타지를 세상에 주고 싶다. 그림으로 부자들의 돈을 끌어모아서 그 돈으로 세상에 위로를 돌려주겠다."

22일 갤러리 페로탱의 에마누엘 페로탱 대표는 "전시에 걸린 다카시의 작품은 2점 빼고 전부, 아트 바젤 홍콩에 내놓은 조각 6점은 모두 팔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