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섭 화백·파스키에(Pasquier) 주한佛대사 "반갑구나, 친구야"

  • 김충령 기자

입력 : 2013.05.08 00:19

"20년만인데 한 달만에 보는듯… 그땐 한국인들이 문화원 통해
佛문화를 해방구로 여겼었는데 요즘은 프랑스인이 한국에 열광
호섭의 그림에선 여전히 30대의 그가 보이는군요"

"20년 만인데, 꼭 한 달 만에 다시 보는 것 같아요."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프랑스대사관저에서 제롬 파스키에(Pasquier·56) 주한 프랑스 대사가 재불(在佛) 작가 황호섭(58)씨와 부둥켜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추억을 회상했다. 의전도 격식도 내려놓았다. 황 작가는 자신의 작품 2점을 파스키에 대사에게 건넸다. "주한 대사가 아닌 내 친구 파스키에에게 주는 것이니 대사관 소유가 아니에요. 하하!"

이들의 우정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황호섭은 프랑스의 대표적 명문 화랑인 '장 푸르니에'의 전속 작가로 활약하고 있었다. 1990년 그는 '프랑스 추상화의 거장' 클로드 비알라(Viallat)와 함께 프랑스문화원 초청으로 방한했다. 경복궁 동편 삼청로에 있던 프랑스문화원(현 폴란드 대사관)에서 문화참사관 파스키에를 만난다. 황 작가는 "예술을 사랑하고 한국에 심취해 있던 또래 외교관과 금방 가까워졌다"고 했다.

지난 1일 주한 프랑스대사관저에서 파스키에(왼쪽) 대사와 황호섭 작가가 재회했다. 두 사람은 1992년 황호섭 작가 결혼식 때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명원 기자
파스키에 대사는 당시 프랑스문화원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노태우 정권 시절만 해도 청와대 앞 검문·통제가 심했다. 외교관도 예외가 없었다. "당장 전시 준비를 해야 하는데, 통제에 걸려 황호섭과 발만 동동 굴렀던 적도 있었어요." 대학로 거리 전시를 준비하는데 예정에 없던 시위로 전시를 포기했던 사연을 얘기하며 당시 어수선했던 시국을 회상했다.

외국 문화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프랑스문화원은 한국 지식인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규모가 작은 영국·독일문화원과 달리 프랑스문화원에는 각종 영상물, 서적 등이 비치돼 있었다. 한국 젊은 학자들이 프랑스문화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파스키에는 프랑스문화원에서 양국 서적의 번역을 지원하고, 프랑스 영화를 홍보하는 등 교류 업무를 총괄했다.

1992년 파스키에 참사관이 본국으로 귀임했다. 그사이 중견 추상화가로 성장한 황 작가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수백회 개인전을 가졌지만, 파스키에가 영국, 홍콩, 크로아티아 등지에서 해외 근무를 하느라 만날 기회는 없었다. 올해 초, 서울 전시를 준비하던 황 작가는 1992년 당시 프랑스문화원에 근무했던 피에르 캉봉 파리 기메 박물관 학예실장으로부터 "우리 친구가 주한 대사가 됐다"는 뜻밖의 연락을 접했다.

황 작가는 이달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개인전 '세상의 근원에서' 준비로 방한하며 파스키에 대사와 재회했다. 대사는 황 작가의 전시 서문을 직접 쓰기도 했다. 파스키에 대사는 전시가 시작된 지난 2일, 공아트스페이스를 찾았다. 그는 "20년 만에 만난 친구가 멋진 모습으로 활약하는 것을 보니 감개무량하다"면서 "그림들에 여전히 30대의 황호섭이 보인다"며 웃었다.

"20년 전엔 주로 한국인들이 문화원을 통해 프랑스 문화를 접했는데, 요즘은 프랑스인들이 싸이, 나윤선 등 한국 가수에 열광하더군요. 주한 대사로 있는 동안 양국의 문화·과학 교류를 넓히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젠 제2의 황호섭들과 만나 친분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