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인정한 '목소리' 콩쿠르에선 낙방만 15번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3.04.30 23:31

['유럽 오페라 스타' 사무엘 윤]

"단역으로 시작, 여기까지 왔다, 콩쿠르에만 목매는 후배들 성공하려면 무대 경험부터"

사무엘 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주 정명훈의 서울시향이 연주한 콘서트 형식의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이아고였다.사무엘 윤(윤태현·43·사진)은 오텔로의 콤플렉스를 건드려 아내를 의심하게 만들고 마침내 살해하도록 조종하는 악역을, 저음의 베이스 바리톤에 얹어 능란하게 연기해냈다. 그는 시시각각 바뀌는 표정과 몸짓으로 음모를 꾸미는 이아고와 한 몸이었다.

사무엘 윤은 유럽 주요 오페라극장의 캐스팅 제의를 받고 있는 스타다. 올해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주인공 선장과 '로엔그린' 주역을 맡았다. 내년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주역으로 베를린 도이치 오퍼 공연, 2016년 푸치니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로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데뷔…. 2017년까지 그의 스케줄은 꽉 차 있다.

이 모든 게 작년 7월 바이로이트에서 주연 배우 대신 대타(代打)로 올라가 홈런을 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덕분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집중력 있고 뛰어난 공연이었다"며 그에게 호평을 안겼다.

그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90년대 밀라노의 베르디 음악원에 유학갔을 때만 해도 미래가 불투명했다. "콩쿠르에 열다섯 번이나 떨어졌어요. 1차 예선은 통과하는데, 본선 문턱에서 매번 낙방하는 거예요.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생겼는데 재능이 없나보다 절망했지요."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다. "콩쿠르에 붙겠다고 저에게 잘 맞지도 않는, 어려운 아리아만 들고 나간 거예요.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오페라극장 대표들이거든요. 제가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가지고 나갔어야 했는데…."

1998년 토티 달 몬테 콩쿠르에서 겨우 우승했는데, 마침 쾰른 오페라극장 극장장이 심사위원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쾰른 극장 전속가수가 됐다. "처음 맡은 배역이 '저녁 준비됐습니다' 딱 한 소절이었어요. '라 트라비아타'의 조역 플로라의 하인 역이었습니다. 플로라도 주인공 비올레타의 하녀인데, 그 하녀의 하인 역이니 기가 막혔지요."

밑바닥서 출발한 사무엘 윤은 이 극장의 최고참 간판 가수가 됐다. 올 시즌에만 '피델리오'와 '아틸라', '파르지팔' 주역으로 무대에 섰거나 설 예정이다.

요즘 유럽의 성악 콩쿠르 입상자는 절반 이상이 한국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콩쿠르에만 목매는 후배들이 걱정이다. "한국 성악가들은 콩쿠르에서 이기기 위한 경쟁은 잘하는데 오페라 주역으로 성공하는 이들은 매우 적어요.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고 착실히 무대 경험을 쌓아야 성공할 수 있는데요."

사무엘 윤은 오는 2일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베르디 '레퀴엠'에서 독창자로 나선다.

▷서울시향의 베르디 '레퀴엠', 5월 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158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