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4.24 03:06 | 수정 : 2013.05.09 09:59


남편 백건우의 공연이 열리기 직전, 아내 윤정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최근 이 의문을 풀 기회가 있었습니다. 올 3월 말 이스라엘 필하모닉(지휘 주빈 메타)과의 현지 협연 때였습니다.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하이파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세 차례 협연하고, 이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구성된 앙상블과 별도로 두 곡의 실내악을 연주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운동 선수와 마찬가지로 연주회가 열리기 직전에는 연주자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에티켓입니다. 별도의 연습을 할 수도 있고, 자칫 긴장할 경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니까요.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연주회 직전까지 연습에 매달리는 편입니다. 예루살렘의 연주회장에서도 무대 구석에서 베토벤의 협주곡 주요 소절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그의 모습에서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별명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연습하는 그에게 행여 방해라도 될까 가볍게 목례만 보내고 곧바로 무대 뒤로 향했습니다. 윤정희씨는 무대 뒤에 있었습니다. 남편의 연미복을 꼼꼼하게 챙기고 있더군요. 말끔하게 다림질되어있는 옷을 보고 있다가 “보통 다림질은 세탁소에 맡기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윤씨는 “남편의 연주복을 남에게 대신 맡길 수 있나요. ‘백건우의 비서’인 제가 해야지요”라며 환하게 웃더군요.
윤정희씨는 23세에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후 300여편의 한국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습니다. 가장 최근작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詩)’였지요. 프랑스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바쁠 때는 하루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촬영하는 ‘겹치기 출연’도 많았답니다. 아침에 서울에서 영화 찍고 바쁘게 부산으로 내려가 오후에 다른 영화를 촬영하는 스케줄이었지요.
이 때문에 윤씨는 “짐을 풀고 싸는 일이라면 나처럼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노하우를 남편 뒷바라지하는데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핸드백에서 티슈를 꺼내 남편의 구두를 손에 들고 자연스럽게 닦기 시작했습니다. ‘은막의 여왕’이 남편의 연주회에서는 ‘내조의 여왕’이 되더군요. 그 모습을 본 저는 사전 허락을 얻은 뒤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 촬영했습니다.

삶과 마찬가지로 음악 역시 속도가 붙으면 은근슬쩍 건반을 눙치거나 설렁거리기 쉽지요. 반대로 느려지면 감정 과잉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백건우는 마음 속으로 설정한 템포와 강세를 돌아서거나 우회하는 법 없이 지키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강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윤정희씨는 남편의 연주회 중에 반드시 지키는 습관과 원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언제나 1층 객석 뒷자리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자리는 관객들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지만, 또 한 가지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남편의 연주가 끝나면 항상 1층 뒷자리에서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지요. 윤씨는 남편의 연주를 가장 먼저 모니터링 해주는 첫 번째 관객입니다.
또 남편의 연주가 있는 날이면 윤씨는 항상 작은 묵주를 손목에 차고 나옵니다. 작은 십자가가 걸려있는 이 묵주를 만지면서 남편의 ‘선전(善戰)’을 응원합니다. 예루살렘 협연 중에도 윤씨는 1악장의 짧은 오케스트라 합주 대목을 제외하곤 한 번도 두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협연이 끝나고 청중이 박수를 터뜨릴 무렵,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남편이 연주하면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심정이 돼요. 그의 진심이 청중에게 닿기를 기도하지요.”

백건우의 국내외 기자 간담회에서도 간혹 아내 윤정희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도 윤씨는 “오늘은 남편의 비서 역할로 왔다”면서 언제나 취재진 뒤편의 구석자리를 고집합니다. 대체로 조용히 남편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지만, 간혹 빠진 말이 있거나 반드시 강조했으면 하는 구절이 있으면 작은 메모지에 적어서 남편에게 조용히 전달합니다. 이럴 때는 남편의 ‘충실한 매니저’인 셈입니다. 윤씨는 영화 ‘시’를 촬영할 때도 제작사에 나흘만 촬영을 빼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이 나흘은 남편의 연주회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이쯤이면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남편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헌신한다는 이야기로만 들릴 겁니다. 그러면 남편의 ‘외조 점수’는 어떨까요. 윤정희씨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로훈장을 받았던 2011년 4월,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연수 중이던 저도 시상식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조카인 프레데릭 미테랑 당시 문화부 장관은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배우”라는 말로 윤씨의 업적을 기렸지요. 윤씨도 능숙한 불어로 “남편의 이탈리아 연주회를 마치고 오늘 아침 프랑스로 돌아와서 힘든 일정이었지만,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당시 윤씨는 “영화광인 남편과 프랑스의 시네마테크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에 대한 사랑도 더욱 커졌다”면서 ‘남편 자랑’을 빼놓지 않았지요.

이 때 남편 백건우는 시상식장 뒤편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아내의 모습을 바쁘게 담았습니다. 이번엔 남편이 ‘아내의 사진사’ 역할을 자청한 것이지요. 아내뿐 아니라 다른 수상자의 말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조용히 경청하는 남편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날 백건우는 “영화 사랑이 남다른 프랑스 사람들이 아내의 45년 영화인생을 가치 있게 평가해 줬다는 것이 고맙고 아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아내의 모습을 부지런히 촬영하는 그의 뒷모습을 저는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아내 윤씨도 "평생 남편 비서 역할을 해왔는데, 이번엔 남편이 여기저기 알리고 시상식 준비도 챙기면서 평생 처음 제 비서 노릇을 하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이 정도면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저절로 실감나지요. 한 사람이 지닌 삶의 무게를 상이나 훈장으로 온전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고 믿지만, 조금 더 빛나게 해줄 수는 있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 깨달았습니다.

카메라 앞이든, 피아노 앞이든 부부가 이렇듯 주연과 조연을 번갈아 맡으며 서로 따뜻하게 배려하는 모습은 만나기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부부도 가끔은 의견이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2010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이들의 ‘부부 싸움’을 딱 한 번 목격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중국 베이징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던 작곡가 집중 조명 시리즈 가운데 백씨가 개막 연주회 협연자로 초대 받았지요.
차이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협연을 마친 남편 백씨는 숙소로 돌아오던 택시 안에서 “잠시 내려서 베이징의 밤 거리를 산책하고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연주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밤길이 차갑고 늦은 시간에 혹시 위험할 지도 모른다”며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처음에는 의견 교환 정도였지만, 이들 부부의 대화는 조금씩 언쟁으로 번졌습니다. 좁은 택시 안에 함께 앉아있던 저는 잔뜩 웅크린 자세로 이들 부부의 대화를 엿듣게 됐지요.

추운 겨울 베이징 거리를 달리는 비좁은 택시 안에서 갑자기 ‘건반 위의 구도자’에게 동병상련의 심정이 들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