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야유받던 '봄의 제전' 어떻게 현대음악의 始祖 됐나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3.04.17 23:47

22일 뮌헨 필 내한 공연 등 초연 100년 콘서트 잇따라
초연 땐 물건 던지며 야유, 이듬해 콘서트서 환호받아… 리듬 강조한 '음악 혁명'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 섭씨 29도의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파리 관객들은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1882~1971)가 음악을 쓴 신작 발레 '봄의 제전'을 보려고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특유의 원시적이고 역동적인 리듬이 자극적인 불협화음과 함께 오케스트라에서 튀어나왔다. 발레리나들은 웅크리고 발을 구르며 이교도의 제의를 표현했다. 객석에선 고함과 야유가 터져나왔고, 어떤 이는 지팡이를 흔들거나 집어던졌다. 주최 측은 청중을 진정시키느라 불을 껐다 켰다 했다. 화가 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1882~1971)마저 퇴장해버렸다. 20세기 음악사 최고의 극적 순간으로 꼽히는 '봄의 제전' 초연 풍경이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생전 모습
‘봄의 제전’초연 100년을 맞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생전 모습. 쇤베르크와 함께 현대음악의 효시로 꼽힌다.
태양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이교도의 제전을 그린 이 작품은 쇤베르크의 작품과 함께 현대음악의 효시로 기록된다. 스트라빈스키는 당시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봄의 제전'을 쓰면서 어떤 체계도 따르지 않았다. 내가 믿을 것이라고는 내 귀뿐이었다. 나는 들었고 내게 들리는 것을 적었다."

그러나 이듬해 반전이 일어났다. 음악과 무용의 불일치로 초연에 실패했다고 판단한 스트라빈스키는 이듬해 파리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젊은이들은 원시적이고 폭발적인 리듬에 환호했다. 피카소와 마티스, 장 콕토,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등 당대 예술가들도 스트라빈스키를 지지했다.

당대의 비난과 환호를 함께 받았던 '봄의 제전'이 현대음악의 고전 반열에 오른 이유는 뭘까.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는 '봄의 제전'이 초연된 순간을 '음악의 혁명'으로 지목한다. 선율이나 화성이 '주인공'이던 관행을 깨고 리듬을 음악의 주역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예측 가능한 반복적 리듬을 제거해서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아찔함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고 설명한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도 "반세기 전 '봄의 제전'을 처음 들었을 때 신천지가 열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 감동이 1962년 한국 최초의 가야금 창작 음악인 '숲'을 작곡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드물게 연주되던 이 작품을 올해 '봄의 제전' 초연 100년을 맞아 여러 차례 만나게 됐다. '봄의 제전'을 세 번이나 녹음한 지휘자 로린 마젤이 이끄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22일 이 곡을 연주한다. 8월 3일 대관령음악제에서도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의 손열음과 김다솔이 피아노 두 대로 이색 '봄의 제전'을 선보인다. 11월 내한 예정된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11월 29일 지휘자 키릴 카라비츠와 서울시향도 이 작품을 들려줄 예정이다.

▷뮌헨 필 내한 공연 21일 베토벤 교향곡 4·7번, 22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협연 조성진), '봄의 제전'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