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3.20 00:11
미술관 설립자의 '묘수' - 서울미술관 옆 면세점 개점, 외국인 관광객 방문 줄이어
돈 버는 미술관으로 - 면세점 임대료로 수익 보전
쇼핑과 예술 관람 한 곳에서… 석파정 연계 '패키지'도 준비

19일 오전,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멈춰선 곳은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관광객 수십명이 미술관 1층 화장품 전문 면세점 '아트 코리아'로 몰려갔고, 이어 앞서 들어간 팀이 밖으로 또다시 쏟아져 나왔다. 붉은 가방을 끌고 나오는 중국인 손님을 보며 안병광(56·사진) 유니온약품 회장이 미소지었다. "저 가방은 50만원어치 이상 구매해야 주는 가방인데…." 이 면세점에는 하루 10팀, 500명 안팎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미술관 옆 화장품 면세점. 사립미술관인 서울미술관이 자구책으로 만든 '묘수'다. 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미술관 건물에 면세점 세를 들일 수 있느냐고 다들 반대했지만 제가 밀어붙였어요. 미술관이 '돈 잡아먹는 하마'라는 편견을 고치고 싶었어요."
안 회장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던 젊은 시절 이중섭의 '황소'에 매료됐던 인연으로 미술품 수집에 발을 들였다. 미술관은 그의 오랜 꿈. 그러나 기업가 관점에서 미술관은 사실 "미쳐야 하는 일"이다.
작년 8월 개관한 이 미술관 관람객은 평일 200명, 주말 600명 안팎. 개관 기념 이중섭 전엔 하루 최고 1200명이 든 적도 있지만, 1인 평균 6000~7000원짜리 입장권 매출은 1년에 3억~4억이 고작이다. 한 해 10억쯤 들 운영비에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미술관 개관과 함께 입점한 면세점은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다. 한 달 3000만원 월세로 일단 운영비의 30% 정도가 충당된다. 신생 미술관 입장에선 적지 않은 도움이다. 면세점 외관도 미술관 외관과 크게 어긋나지 않아 다행이다.

면세점은 미술관에 새로운 관객의 가능성도 열어줬다. 지난달 말 국내 30여개 관광사 대표들이 미술관을 다녀갔다. 내달 1일부터 면세점과 미술관 뒤편 대원군 별장 '석파정(石坡亭·서울시 유형문화재 26호)'을 연계하는 코스 관광이 시작된다. "중국 관광객 80%에 나머지는 일본·동남아 사람들이에요. 그동안은 아줌마들 쇼핑하는 동안 남편들이 갈 데가 없었죠. 구한말 조선을 호령했던 권력자의 역사가 깃든 석파정은 충분히 흥미로운 관광상품인 거죠." 매일 300~400명이 1인당 3000원씩 내고 석파정을 둘러볼 것으로 전망된다.
미술관 이주헌(52) 관장도 긍정적으로 본다. "장기적으로는 국가별 작가 교류전이나 중국 현대미술전 등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목적형 전시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중국의 큰 미술관과 협약을 맺고 소장품 교환 전시 등도 추진할 생각"이라고 했다. "저도 나이 먹을 테고, 늘 사업이 잘 풀릴 수만은 없잖아요. 지금도 관장과 6명의 큐레이터들이 전시 때마다 밤샘 고생이에요. 서울미술관을 자립시켜서 '미술관은 끝없이 돈만 든다'는 시각을 바꾸고 싶어요. 그러니까 공짜 표만 찾지 마시고, 꼭 표 사서 들어오세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