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쇼이 극장, 발레리나들에게 성상납 강요"

  • 허자경 기자

입력 : 2013.03.19 11:17 | 수정 : 2013.03.19 11:41

볼쇼이 극장이 발레리나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와 성상납을 강요했다고 주장한 아나스타시야 볼로치코바./조선일보DB
러시아 문화예술의 상징 ‘볼쇼이 극장’에서 에스코트 서비스·성상납 등 비리와 독단적 운영이 횡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볼쇼이 극장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동하다 지난 2003년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극장에서 쫓겨난 아나스타시야 볼로치코바(37)는 17일(현지시간) 현지 민영 TV 방송 토크쇼 프로그램 ‘젤레즈니예 레디(철의 여성)’에 출연, 볼쇼이 극장이 극장 소속 발레리나들을 돈 많은 기업인들을 위한 연회에 강제 동원하고 성상납까지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볼로치코바는 이 프로그램에서 “극장을 떠난 뒤 단원들이 전화를 걸어와 엄청난 이야기들을 털어놨다”며 “이는 10년 전의 일이며 현재는 상황이 훨씬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극장의 유명한 행정 담당자가 ‘목록’을 보고 발레리나들을 불러 특정 연회에 데리고 간다”며 “그 후에는 침실로 가야 하는 등 온갖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극장 내 에스코트 서비스와 성상납에 대해 폭로했다.

볼로치코바는 “주로 돈 많은 갑부나 극장 후원회 회원들이 그 대상”이라며 “이들은 발레리나를 ‘초청’한다고 하지만, 이 ‘초청’은 ‘윗선’인 지도부를 통해 동원 형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또 볼로치코바는 “만약 극장 측의 지시를 거부할 경우 추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협박이 뒤따른다”며 “파티에 가면 앞날을 보장받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공연에서 빠진다는 소문이 극장 내에서 공공연히 오가는데 발레리나들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토크쇼에 함께 출연한 볼쇼이 수석무용수 니콜라이 치스카리드제(39)는 볼로치코바의 주장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신 치스카리드제는 지난 1월 발생한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 세르게이 필린(42)에 대한 황산 테러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2011년부터 볼쇼이 발레단 예술 감독을 맡은 세르게이 필린은 지난 1월 귀가하던 도중 모스크바 자택 인근에서 황산테러를 당해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현재 독일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이날 방송에서 치스카리드제는 “현재 극장 단원들은 필린이 심각하게 다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볼쇼이 극장 측이 자신들과 맞서는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일부러 필린의 부상을 부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치스카리드제는 황산 테러 사건 이전부터 볼쇼이 극장 지도부와 갈등을 겪어 왔다는 이유로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왔다.

볼쇼이 극장 측은 방송내용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18일 극장 공보실장 카테리나 노비코바는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아직 방송 내용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황산테러 사건의 피의자로 볼쇼이 발레단 주연급 무용수 파벨 드미트리첸코(29)와 공범 2명을 구속,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드미트리첸코가 경찰에서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현지의 예술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래전부터 볼쇼이 극장 내에 만연한 비리와 독단적 운영방식 등의 문제가 곪아 터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종합시사매체 The Atlantic은 18일 이 사건에 대해 보도하며 “우리의 과거에 행복이란 없었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미래엔 아무 것도,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러시아 볼쇼이 극장 출신 발레스타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