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베르디만 편애할까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3.03.16 01:03

동갑의 두 음악가 200주년 공연으로 세계가 들썩… 국내에선 바그너 오페라 침체
16시간이나 되는 바그너 공연… 음악 무겁고 연주 어려워 기피

-동시대 풍미했지만 삶은 달랐다
베르디는 유명세 비해 소박… 바그너, 反유대에 여성 편력자

세계 음악계는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는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1813~1901)와 독일 작곡가 바그너(1813~1883)를 기념하는 공연을 올리느라 부산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은 올 시즌 오페라 27편 가운데 '니벨룽의 반지' 4부작과 '파르지팔' 등 바그너 작품이 5편,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리골레토' 등 3부작을 비롯한 베르디 작품이 7편이 공연 중이다. 비엔나 국립오페라 극장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파르지팔' '반지' 4부작 등 바그너의 대표작을 총출동시키고, '시칠리아섬의 저녁 기도' '돈 카를로' 같은 베르디 오페라를 올린다.

(왼쪽 위)바그너, (오른쪽 위)베르디. 2005년 9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바그너‘반지’4부작 중 발퀴레(왼쪽 아래).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오페라‘팔스타프’연습 장면(오른쪽 아래). 오는 21일부터 나흘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다르다. 국립오페라단이 다음 주 올리는 '팔스타프'를 비롯, '아이다''돈 카를로' 등 베르디 작품은 이어지지만 바그너는 10월의 '파르지팔' 외엔 눈에 띄지 않는다. '파르지팔'도 국내 초연이다. 독일 오페라의 최고봉인 리하르트 바그너가 국내에선 베르디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셈이다.

왜 바그너는 없나

바그너 공연이 국내에서 희박한 이유는 제작·연주의 어려움이 손꼽힌다. 바그너 오페라는 장중한 오케스트라 선율에 밀리지 않는 특별한 힘과 체력을 지닌 '바그너 가수'와 금관 악기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내 연주자들은 이런 면에서 취약한 편이다. 게다가 '반지' 4부작은 16시간 가까운 공연 시간을 자랑한다.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반지' 4부작 국내 초연이 이뤄진 게 2005년 러시아 지휘자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 극장 내한 공연이었을 정도다.

바그너 오페라는 일단 듣기에 어렵다. 베르디가 감성적 아리아를 끼워넣어 오페라를 쉽게 즐길 수 있게 관객을 배려한 데 반해, 바그너는 독일 민족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구원을 추구하는 철학적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베르디 하면, '여자의 마음'(리골레토) '축배의 노래'(라 트라비아타) '대장간의 합창'(일 트로바토레) 같은 아리아가 쉽게 떠오르지만, 바그너 오페라는 흥얼거릴 만한 아리아가 드물다. 바그너 자신이 아리아보다 관현악 중심의 음악과 극(劇)을 통합시킨 총체극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국내 애호가 중에도 베르디 팬이 절대적으로 많은 편. 바그너에 대해선 "부담스럽다"는 다수와 "그 예술성은 누구도 필적할 수 없다"는 소수 마니아로 나뉜다.

바그너를 좋아하는 일명, 바그네리안들의 활동은 국적을 불문하고 적극적이다. 국내 한국바그너협회 역시 공연이 열릴 때마다 공연장을 찾아 열기를 높인다.

이탈리아·독일 민족의 상징

베르디와 바그너는 둘 다 각 민족을 대표하는 국민 음악가. 두 나라가 통일로 가는 시점에 왕성하게 활동했고, 그들 음악은 '통합'의 상징이 됐다. 특히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찬가 격. 시민들은 극장은 물론, 거리에까지 몰려나와 '비바 베르디'(Viva Verdi·베르디 만세)를 외치고 다녔다. 베르디는 작곡가 이름이자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의 줄인 이름이었다.

바그너는 비스마르크 숭배자로 유명하다. 그는 비스마르크를 게르만 정신을 구현한 인물로 생각했다. 게르만에 대한 사랑은 반(反)유대주의로 이어졌다. 그는 유대인을 증오하는 글을 발표했고, 훗날 히틀러는 이런 바그너를 열렬히 숭배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 연주를 듣기 어렵다.

평행선 인생, 베르디와 바그너

한때 정치 바람으로 로마 의회선거에 출마한 것을 제외하면 베르디는 소박하게 늙어간 사람이었다. 반면 바그너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했고, 후원자와 지인(知人)의 아내를 가로챈 여성 편력자. 그는 독일 남부 소도시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전용극장을 지었다. 이곳에선 종교제의를 치르듯 바그너 악극만 올린다.

둘은 동시대 최고의 작곡가였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한다. 베르디는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보고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고, 바그너도 베르디 오페라를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기록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