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주가 끝난 10시, 다시 독주회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3.03.08 23:04

피아니스트 손열음 독주회
앙코르 7곡, 쉴 틈 없이 이어져… 아찔한 기교에 휘파람 선율

7일 예술의전당. 보통 연주회가 끝나는 밤 10시 무렵,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독주회 3부'를 시작했다. 리사이틀 전·후반부가 끝난 뒤에도 7곡의 앙코르를 폭풍처럼 쏟아낸 것.

흥겨운 재즈 분위기가 가미된 20세기 미국 작곡가 윌리엄 볼컴의 '에덴의 정원'을 첫 앙코르로 들려줄 때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아찔한 기교가 쉼 없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왼발로는 무대 바닥을 쿵쿵 누르며 리듬을 빚었고, 양손으로 피아노 뚜껑을 두드리며 박자를 만들었다. 선율을 휘파람으로 부는가 하면, 팔꿈치로 건반을 '찍어 누르며' 혼돈을 표현했다. 짬짬이 객석을 향해 박수를 두 번씩 치면서 반응을 이끌어내자, 앙코르는 자연스럽게 관객과 손열음의 대화로 변했다.
7일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연 피아니스트 손열음. /크레디아 제공

앙코르를 마친 손열음은 손짓으로 건반을 가리키며 "더 원하세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와 쇼팽의 '연습곡' 등 단골 연주곡에 이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비창' 3악장을 통째로 피아노로 편곡해서 다섯 번째 앙코르로 들려주자, 25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의 환호도 더욱 높아졌다.

전·후반에 흠잡을 구석이 없었던 손열음의 열 손가락도 네 번째 앙코르부터 조금씩 풀려 갔다. 하지만 그는 작심한 듯이 '앙코르 질주'에 감속 페달을 밟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을 편곡한 버전에 이어서, 일곱 번째 앙코르로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한밤의 작별 인사로 들려주자 비로소 청중도 아쉬움을 덜었다. 2시간 40분에 이르는 연주회 뒤에도 손열음은 밤 11시 15분까지 팬 사인회에 정성껏 응했다.

손열음의 리사이틀은 연주회 이전부터 시작됐다. 직접 작품 해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작곡가 쇼팽의 발라드와 마주르카, 왈츠 등을 들려주기에 앞서 "중간이 없어 양극단을 오가는 감정선이야말로 쇼팽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프로그램에 썼다. 첫 곡인 쇼팽의 발라드 2번 작품 38번에서 한껏 절제된 장조와 폭발하는 단조의 짙은 대비로 양극단의 감정선을 펼쳐 보인 손열음은 '화려한 대왈츠'에서는 한껏 가속을 내면서 화려함을 강조했다. 옅은 스모키 눈 화장과 검은 드레스는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을 연상시켰다.

쇼팽으로 '준비 운동'을 마친 손열음은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알캉의 '이솝의 향연'에서 무시무시한 건반 위의 곡예를 펼쳤다. 무뚝뚝하게 출발한 주제가 관습적 진행에서 조금씩 비켜나면서 기괴하고 위트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변주곡을 그는 '2단 평행봉'처럼 날렵하게 조리했다. 마지막 곡인 러시아 현대 작곡가 니콜라이 카푸스틴의 연습곡에서는 그동안 꼭꼭 감춰 놓았던 재즈 피아노의 장기가 작렬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처럼 주류의 경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재즈와 현대음악까지 비주류의 감수성을 껴안은, 모방이 불가능한 예외적 연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