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06 00:53
[포항 원로 연출가 김삼일, 연극인생 50년 만에 소극장 열어]
1966년 만난 이해랑 선생 "자넨 지방 무대 지켜주시게"
그렇게 143번째 작품까지 와
스물넷 포항 청년이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찾아간 곳은 '이해랑 이동극단' 단원 모집 면접장. 이름만 듣던 이해랑 선생 앞에 서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3년 전부터 포항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고 하자 선생은 뜻밖의 주문을 했다. "포항에서 무대를 지키면 내 극단에 들어온 것과 같다. 나는 이제야 버스에 단원 싣고 방방곡곡 다니려 하는데, 자네는 나보다 3년 앞서 시작했지 않는가. 그 정신으로 지방을 지켜달라." 그리고 덧붙였다. "맑은 영혼의 연극인이 돼주시게."
그것이 1966년이었다. 이제는 일흔이 넘은 '원로'가 된 연출가 김삼일(71)씨는 5일 "맑은 영혼을 강조하신 선생님의 뜻을 잇기 위한 장소를 드디어 마련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장소'는 포항 시내 중심지인 북구 상원동 육거리의 한 빌딩 3층에 개관한 '김삼일자유소극장'이다. 관객 60명이면 꽉 차는 작은 공연장이 특별한 것은 9년 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년 전 인연의 끈 때문이다.
그것이 1966년이었다. 이제는 일흔이 넘은 '원로'가 된 연출가 김삼일(71)씨는 5일 "맑은 영혼을 강조하신 선생님의 뜻을 잇기 위한 장소를 드디어 마련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장소'는 포항 시내 중심지인 북구 상원동 육거리의 한 빌딩 3층에 개관한 '김삼일자유소극장'이다. 관객 60명이면 꽉 차는 작은 공연장이 특별한 것은 9년 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년 전 인연의 끈 때문이다.

김씨는 이해랑 선생을 처음 만나고 19년 만인 1985년 제3회 전국연극제에서 차범석 선생의 작품 '대지의 딸'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때 심사위원장이 이해랑 선생이었다. 다시 만난 선생은 "거봐, 계속 하니까 좋은 일 생기잖아"라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끝까지 해봐"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거기서 다시 19년이 흐른 2004년 김씨는 제14회 이해랑연극상을 받았다. 선생이 작고하고 5년 후였다. 40년간 지방에서만 활동한 연극인이 연극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사건'이었다. 김씨가 초빙교수로 근무하던 경북 경산의 대경대는 수상 축하 플래카드를 1년 내내 떼지 않고 걸어둘 정도였다. 김씨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맑은 연극 정신'을 지키기 위해 항상 공연할 수 있는 소극장 하나 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이 이뤄진 것이다. 공연장이 들어선 자리도 의미가 남다르다. 20대 배우 지망생이던 김씨가 연습 장소가 없어 별빛을 조명 삼아 고래고래 대사를 외치며 연습하던 골목이 바로 옆이다. 평소에 자주 드나들던 골목을 지나던 김씨는 지난달 우연히 건물 3층에 붙은 임대 공고를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달려가 계약했다. 개관에는 김씨의 사비 4000만원이 들어갔다. 보증금이 2000만원, 의자 사고 커튼 달고 손잡이 설치하는 비용으로 2000만원이 더 들었다. 건물주의 선친과 알고 지내던 사이라 "월세는 극장 상황 봐서 결정하자"고만 했다.
내달 13일 올라가는 개관작은 안톤 체호프의 '백조의 노래'를 각색한 '노배우의 고백'. 지난해까지 12년간 포항시립극단 상임연출가로 일한 그는 연출작이 142편에 이른다. '노배우의 고백'은 그의 143번째 연출작. 지방극단의 68세 배우가 늙었다고 쫓겨날 위기에 몰리자 햄릿과 맥베스의 대사를 외치며 울고, 그에게 대사를 불러주던 극단 직원도 함께 눈물짓는다. 둘은 "그래도 내일은 어쨌든 태양이 뜰 것이다. 살아보자!"고 뜻을 모은다는 내용. "극장 이름처럼 자유롭게 연극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께 약속한 대로 맑은 연극 정신이 포항 너머 서울까지 전달되도록 죽도록 이곳 무대를 지키겠습니다."
거기서 다시 19년이 흐른 2004년 김씨는 제14회 이해랑연극상을 받았다. 선생이 작고하고 5년 후였다. 40년간 지방에서만 활동한 연극인이 연극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사건'이었다. 김씨가 초빙교수로 근무하던 경북 경산의 대경대는 수상 축하 플래카드를 1년 내내 떼지 않고 걸어둘 정도였다. 김씨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맑은 연극 정신'을 지키기 위해 항상 공연할 수 있는 소극장 하나 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이 이뤄진 것이다. 공연장이 들어선 자리도 의미가 남다르다. 20대 배우 지망생이던 김씨가 연습 장소가 없어 별빛을 조명 삼아 고래고래 대사를 외치며 연습하던 골목이 바로 옆이다. 평소에 자주 드나들던 골목을 지나던 김씨는 지난달 우연히 건물 3층에 붙은 임대 공고를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달려가 계약했다. 개관에는 김씨의 사비 4000만원이 들어갔다. 보증금이 2000만원, 의자 사고 커튼 달고 손잡이 설치하는 비용으로 2000만원이 더 들었다. 건물주의 선친과 알고 지내던 사이라 "월세는 극장 상황 봐서 결정하자"고만 했다.
내달 13일 올라가는 개관작은 안톤 체호프의 '백조의 노래'를 각색한 '노배우의 고백'. 지난해까지 12년간 포항시립극단 상임연출가로 일한 그는 연출작이 142편에 이른다. '노배우의 고백'은 그의 143번째 연출작. 지방극단의 68세 배우가 늙었다고 쫓겨날 위기에 몰리자 햄릿과 맥베스의 대사를 외치며 울고, 그에게 대사를 불러주던 극단 직원도 함께 눈물짓는다. 둘은 "그래도 내일은 어쨌든 태양이 뜰 것이다. 살아보자!"고 뜻을 모은다는 내용. "극장 이름처럼 자유롭게 연극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께 약속한 대로 맑은 연극 정신이 포항 너머 서울까지 전달되도록 죽도록 이곳 무대를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