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된 극장, 5000년 된 작품이 예술 교과서

  • 런던=신정선 기자

입력 : 2013.01.22 23:30

['소프트 파워 강국' 문화 예술 교육 현장을 가다]
[下] 전통이 키우는 예술 인재… 英 글로브극장·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연극을
현역 배우에게 연극 배우는 아이들 런던 학교 70%가 이 프로그램 참여
-세계 최대 디자인 박물관의 미술 교육
4만5000점 전시물 옆에 두고 작업 현대와 균형 위해 디지털아트 전시도

셰익스피어의 극단이 세워 지상의 모든 배우들에게 '꿈의 무대'라 불리는 영국 런던 글로브극장에 지난달 중순 15명의 '배우'가 등장했다. 패딩 점퍼에 청바지,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은 흑인·백인·아시아인 등 피부색도 다양하다. "부족한 부분은 관객이 잘 채워주세요!" 극장이 위치한 서더크 지역 청소년 프로그램 참가자들이었다.

이날 공연은 셰익스피어 작 '겨울 이야기'의 바탕이 된 로버트 그린의 '판도스토'였다. 대본을 손에 든 학생도 있었다. 교육 담당자 매기 틸즈레이는 "즐기며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본을 외우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럴싸한 조명이나 소품도 없었고 관객도 80명에 불과했지만, 극장의 열기만은 뜨거웠다.

◇셰익스피어의 심장에서 연극 교육

'소프트 파워' 1위(지난해 11월 영국 '모노클' 조사) 영국은 '2013년의 예술'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400년 전 셰익스피어에게 묻고 있었다. 글로브극장은 그저 공연장이 아니라, 고전(古典)의 혼과 현재의 인재(人材)를 이어주는 곳이다. 서더크 청소년 프로그램은 10~25세 학생 60명에게 10주간 매주 토요일 무료 교육을 실시한다. 교사는 현역 배우와 관련 전문가다. 이날 공연에 참가한 에드워드(13)는 아버지가 영국인,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다. 어머니 에리코는 "에드워드가 학교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해 걱정이었는데, 글로브 교육을 받은 후론 친구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에드워드는 "셰익스피어 덕분에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고 시간을 보내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기부금이나 티켓 판매 등 자체 수익으로 꾸리는 글로브 교육 프로그램에는 런던 각급학교 70%가 참여하며, 연간 학생 700여명이 실제 무대에 선다.

영국 런던 서더크 지역 학생들이‘셰익스피어의 심장’글로브극장에서 지난달 10주 연극 교육을 마무리하는 공연에 열중하고 있다. 왼쪽 작은 사진은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의 디지털 디자인 주간 행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오래된 박물관을 영감의 보고(寶庫)로

세계 최대 공예·디자인 박물관인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V&A)도 그저 '관광코스'가 아니라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지난달 학생 20여명은 4만5000점 전시물에 둘러싸여 점토를 빚는 법을 배웠다. 박물관은 5000년 전 소장품을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원천으로 개방하고 활용한다. 샘플 작품이 따로 필요 없다. 강사는 소장품을 함께 둘러보며 "이 선(線)을 보라" "이 장식을 보라"며 살아있는 디자인 교재로 활용했다. 국가 예산으로 지원되는 프로그램으로 대부분 무료이며, 학교 단위 프로그램은 교통비까지 지원한다.

V&A는 160년 전 건립됐지만 '첨단' '현대'와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디지털 디자인 주간' 때는 디지털 아티스트 36명을 초청해 현장에서 시연회를 열었고, 2주간 열린 패션 페스티벌에는 10대 참가자만도 4000명이 몰렸다.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인 폴 스미스가 강사로 나섰고, 알렉산더 매퀸의 디자이너 크리스틴 닐센은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를 가져와 상세한 설명으로 박수를 받았다. 세계 최고 디자이너들이지만 강의료는 받지 않는다. V&A 교육 담당 에마제인 에이버리는 "문화는 앞서 개척한 이들의 재능 기부로 이어져야 한다는 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