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마음으로 담은 山川에 대한 '밥값'

  • 곽아람 기자

입력 : 2013.01.16 23:28

이호신 화첩 '지리산진경' '가람진경'

2008년 어느 겨울날, 지리산 자락에 눈이 펑펑 내렸다. 다음 날 새벽 화가 이호신(56)은 천왕봉(天王峰)에 올랐다. 일출(日出)부터 오후까지, 천왕봉 인근 풍경을 화첩 한 권에 빼곡히 그려넣었다. 산을 내려온 다음 그는 화첩에 기록한 풍경, 마음에 담아온 풍경을 조합해 수묵 채색화 한 점을 그려냈다. 눈 온 다음 날 특유의 파란 하늘, 흰 눈에 묻힌 산등성이, 비죽비죽 조금씩 형체를 드러낸 겨울 나뭇가지, 그리고 산 아래로 보이는 법계사(法界寺)와 산장. 이씨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사생(寫生), 마음에 담은 것을 그리는 사의(寫意). 이 둘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우리 전통의 진경(眞景)산수"라고 했다.

'21세기 진경산수 화가'로 불리는 이호신씨가 지리산과 일대 풍경 160여 점을 실은 화첩 '지리산진경(智異山眞景)'과 경주 감은사지, 양산 통도사, 하동 쌍계사 등 전국 사찰 83곳 그림 130여 점을 담은 '가람진경(伽藍眞景)'을 도서출판 다빈치에서 출간했다. 수작업으로 양장 제본해 책등을 실로 꿰맨 덕에 책을 펼치면 가로로 긴 그림을 옛 화첩처럼 접힌 부분 없이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호신의 2010년작‘삼신산 쌍계사’. /다빈치 제공
이씨는 30여 년 전부터 배낭을 메고 전국 산천을 돌아다니며 우리 산하(山河)와 문화유산을 화폭에 담았다. 2011년 경남 산청에 작업실을 마련해 정착했고, 지난해엔 자연풍광이 아름답고 고택(古宅), 사당 등의 문화유산을 고루 갖춘 산청군 단성면 '남사예담촌'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내기도 했다. 이번에 출간한 책엔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간 그려온 작품이 실렸다.

그는 우리 땅을 계속해 그리는 이유를 "내가 지금 우리 산천을 누리는 데 대한 밥값"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밥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