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1.17 01:30
['스크린 오페라' 관람해 보니]
영화 상영하듯 음식 반입할 수 있고 성악가 위한 중간 휴식 시간 사라져
무대 제한 없어 스펙터클 대폭 강화…
유명 테너의 아리아에도 박수 없어 현장 감동 재현하기엔 아쉬움 남아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회를 영화관 스크린으로 보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국내에서도 2009년 미국의 '오페라 1번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실황 상영을 시작으로 올해는 클래식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7~8월 잘츠부르크 축제 상영 때는 오페라 2회와 빈 필 음악회 2회 모두 매진됐고, 지난 1일 빈 필 신년 음악회도 예매 시작 사흘 만에 좌석 90%가 팔려나가 상영관을 추가했다.
'스크린 오페라'의 열기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의 메가박스 극장을 찾았다. 이달은 지난 2009년 '호반의 도시'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의 야외 호숫가를 배경으로 열렸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상영 중이다. 평일 오후 8시의 늦은 시간 36석의 퍼스트 클럽 상영관에는 12명의 관객이 앉아 있다. 퍼스트 클럽은 입장권이 3만5000원.

물 이외의 식음료 반입이 엄격하게 금지되는 공연장과 달리 '영화관 오페라'는 팝콘과 핫도그, 나초와 오징어까지 맘껏 씹으면서 볼 수 있다. 얌전하게 팝콘과 콜라를 구입한 뒤 영화관에 입장하려고 하자 직원이 친절하게 다가와 "퍼스트 클럽은 식음료 무료 제공이니 지금 산 것은 환불이 가능하다"고 안내해준다.
휴대전화 진동마저 금기로 삼는 공연장과 달리 영화관에선 비행기 일등석처럼 다리 쭉 뻗고 앉아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얼마든지 낼 수 있다. 공연장에선 상상 불가능한 풍경이지만 영화관의 빵빵한 스피커는 팝콘 씹는 소리마저 넉넉하게 덮어줬다.
성악가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필수적인 중간 휴식도 영화관 오페라에선 사라졌다. 대형 무대와 개선 행진곡으로 유명한 이 오페라를 공연장에서 보면 3시간을 훌쩍 넘기지만 영화관 오페라는 2시간20분으로 깔끔하게 맞췄다.

전통적인 오페라 애호가들은 '극장 스피커로는 오페라의 음향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불만을 종종 제기한다. 하지만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야외 오페라라는 한계 때문에 본래 마이크를 사용한다. 영화관에서 음향 차이는 사라졌다.
대신 스펙터클은 대폭 강화됐다. 호숫가에 대형 크레인 두 대를 설치하고 2막의 개선 장면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들어 올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호수의 자연 배경을 활용해 병사들이 가족과 재회할 때 물가에서 춤추도록 한 설정도 신선했다. 크레인을 통해 남녀 주인공을 하늘로 끌어올리며 세상과의 작별을 형상화한 결말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영국 연출가 그레이엄 비크는 언제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고전을 재구성하는 미덕을 갖고 있다. 카메라의 부지런한 움직임과 빠른 장면 전환은 오페라글라스의 번거로움을 덜어줬다.
남자 주인공 라다메스 장군 역을 맡은 테너의 목소리는 초반부터 불안했다. 유명한 테너 아리아 '청아한 아이다'에도 극장에서 박수는 터지지 않았다. 하긴 ET를 태운 엘리엇의 자전거가 하늘을 날고, 로키가 상대 선수를 때려눕혔던 1980년대 이후로 영화관에서 박수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수업시간에 딴짓 하는 것처럼 관객은 편안한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테너의 아리아에도 연방 팝콘을 씹고 있었다. 어쩌면 '영화관 오페라'는 관객에게 안락함과 자유를 선사한 대신 박수와 감동을 앗아간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