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1.15 23:44
['소프트 파워 강국' 예술 교육 현장을 가다]
[上] 빈민가 아이에게 오페라, 노인에겐 조각 가르치는 프랑스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수업 - 1000명 대상 2년간 무료 진행
무대 미술·극장 행정까지 교육, 예술과 친숙해지도록 도와
시민 예술가 만드는 '아틀리에' - 회화·조각 등 550개 강좌 마련
수강료 3분의 2 市에서 지원… 나머진 소득에 따라 차등 부과

'소프트 파워'가 국가의 매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미국을 제치고 '소프트 파워' 1위(2012년 11월 잡지 '모노클')에 오른 영국 수도 런던과 4위 프랑스 파리의 예술 교육 현장을 찾아갔다. 7세 아이부터 88세 노인까지, 그들은 일상에서 예술을 배우고 그것을 '국가 파워'로 만들고 있었다.
"이제부턴 가방을 꼭 껴안으세요." 프랑스 파리 바베스 호슈슈아트 지하철역에 내리자 안내자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18구. 아프리카와 아랍계 이민자가 모여 사는 동네다. 대낮에도 마약이 거래되고 소매치기와 강도가 예사로 벌어지는 우범지대 중 하나로 꼽힌다. 인도 양옆에서 어슬렁거리던 남성 10여명 중 한 명이 일행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시가렛, 드러그(담배, 마약)." 황급히 발걸음을 옮겨 한 공립 초등학교가 있는 에콜 드 히쉬옴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학교 문을 여니 낭랑한 노랫소리가 일행을 맞았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거리 소년들의 합창'이었다. 7, 8분 거리에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우범지대에 울려 퍼진 카르멘
악명 높은 우범지대 한가운데에서 울려 퍼진 합창은 3층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흑인·아시아인·아랍인 학생 18명의 노랫소리에 교사의 지시가 떨어진다. "하모니를 맞춰서! 두 개의 심장이 하나가 되게!" 1주일에 2시간씩 배운 지 4개월째. 학생 페리엘(9)에게 "오페라가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집중하면 전혀 어렵지 않다"는 의젓한 답변이 돌아왔다.
일반인들은 지나가기도 꺼리는 빈민 지역에 '오페라' 바람이 들게 한 것은 파리국립오페라단의 '학교에서의 10개월 그리고 오페라' 프로그램이다. 각급 학교 33곳의 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2년 단위로 진행된다. 10개월은 학교에서, 이후에는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배운다. 오페라를 큰 틀로, 노래, 무용, 의상, 음악사, 무대미술, 극장 행정까지 관련 분야를 모두 접할 수 있다.

간단한 드로잉이나 동요도 아니고 귀족 예술의 정점인 오페라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예술의 안내자가 될 수 있을까? 오페라단 교육 담당자 도미니크 로데는 "오페라 장르를 좋아하게 되지 않더라도, 오페라 극장 건물에 친숙해지는 것부터가 예술과 사귐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오페라라는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에 친숙해지면 모든 문화가 바로 곁에 있음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1991년 시작된 프로그램은 22년간 1만7000여명을 배출했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연간 예산은 80만유로(약 11억3000만원). 교육부에서 일부 지원하고 프랑스 최대 정유사 토털, 전력가스회사 GDF수에즈 등 기업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파리 아틀리에 "누구나 예술가"
어른들의 일상에 문화를 주입하는 것은 아틀리에 강좌다. 파리아틀리에협회가 운영하는 29군데 강의실은 파리에 예술을 숨 쉬게 하는 허파가 된다. 지난달 18일 차이나타운이 있는 13구에서는 북아트와 실크스크린 강좌가 한창이었다. 북아트 수업을 듣던 한 중년 여성은 책장 하나하나를 부서지기라도 할 듯 조심스럽게 넘기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책은 1962년 발간된 앙드레 말로의 '서양의 유혹'. 한 장씩 다시 풀칠하고 제본해 50년 전 책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배불러야 예술한다"는 인식 버려야
오페라 프로그램과 아틀리에 강좌의 공통점은 시작이 매우 미미했다는 것. 오페라단의 교육 담당자 크리스틴 에센브레네는 "첫 3년간은 기업 후원 약속도 없이 그저 '의지'만으로 5개 학급을 운영했다"며 "장기적인 안목이 없었으면 오늘의 성과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미니크 세라지 파리아틀리에협회 디렉터는 "예술은 소비가 아니라 자기완성을 위한 수단"이라며 "문화생활은 배가 부른 후에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일상에서 문화가 싹튼다"고 말했다.
[파리오페라단 교육 2년 뒤…]
학생 90% "자신감 생겨" 60% "글쓰기 향상"
파리국립오페라단은 '학교에서의 10개월 그리고 오페라'를 '인문주의자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특정 예술 장르를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 개개인 인생의 안내자가 되는 데 중점을 둔다는 뜻이다. 교육 담당자 로항 프주는 "무대화가 목적이 아니라 문화에 깨어 있는 심성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페라단 설문 결과, 거쳐 간 학생 중 90%가 '나에 대한 자신감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학생은 80%, '글쓰기 능력이 향상됐다'는 답변은 60%였다.
오는 6월에는 참가를 희망하는 모든 학생이 직접 올리는 대규모 페스티벌이 계획돼 있다. 2015~2017년에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도 연계해 프로그램 내용을 확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