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1.09 23:35
[7] 피아니스트 손열음-농구장에서 응원하기
몇달씩 걸린 연주여행 끝나면 농구장 찾는 '팬 라이프' 시작
18번째 생일도 농구장에서… 그날 허재 은퇴식 있었거든요

러시아 모스크바의 협연 무대는 지난달 25일. 다음 연주는 1월 3일 미국 시애틀 심포니와의 협연. 잠깐 시간이 비었을 때 떠올린 곳은 역시 농구장이었다. 2012년의 마지막 일요일인 12월 30일 낮, 내 고향 원주 동부 프로미의 홈 경기가 열리는 원주 치악체육관을 찾았다. 플레이오프 우승 3회, 시즌 최다 연승(16연승)과 최다승(44승) 기록의 명문 구단이건만, 올해는 어쩐지 하위권을 쉽게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도 농구 얘기는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지난번 연주는 이랬네" 하는 식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대화는 "김주성 선수에게 홍삼이라도 보내야 할까 봐"로 끝난다. 그제야 스스로에게 외친다. '웰컴 백 홈!'
24시간 스포츠 채널이 흐르는 우리 집, 올해로 10년차 원주 동부 프로미 프로농구단의 서포터스가 되는 우리 집, 7년째 시즌권으로 매 홈경기에 출석하는 엄마 아빠를 둔 우리 집이다. 사실 시작은 소소했다. 겨울이라 실내에만 있어서 좀이 쑤셔 하던 동생 둘과 사촌 동생 둘을 농구장에 보냈던 것이 계기였다. 마치 자신들이 풀 타임 경기라도 뛰고 온 듯 신난 아이들 모습에 자극받은 엄마가 '농구장 대열'에 합류했고, 그 뒤를 내가 이었다. 얼마 후 '우리 팀' 동부가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가자,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표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허재 감독의 현역 시절 등번호인 9번의 영구 결번 기념식이 열렸던 2004년 5월 2일은 내 18번째 생일이었다. 물론 내 생일잔치는 농구장을 가는 걸로 대신했다. 2011년에는 우리 가족이 선수단에 한우 고기 50인분을 선물했다. 선수들 체력 회복에는 한우가 최고라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도 농구 얘기는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지난번 연주는 이랬네" 하는 식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대화는 "김주성 선수에게 홍삼이라도 보내야 할까 봐"로 끝난다. 그제야 스스로에게 외친다. '웰컴 백 홈!'
24시간 스포츠 채널이 흐르는 우리 집, 올해로 10년차 원주 동부 프로미 프로농구단의 서포터스가 되는 우리 집, 7년째 시즌권으로 매 홈경기에 출석하는 엄마 아빠를 둔 우리 집이다. 사실 시작은 소소했다. 겨울이라 실내에만 있어서 좀이 쑤셔 하던 동생 둘과 사촌 동생 둘을 농구장에 보냈던 것이 계기였다. 마치 자신들이 풀 타임 경기라도 뛰고 온 듯 신난 아이들 모습에 자극받은 엄마가 '농구장 대열'에 합류했고, 그 뒤를 내가 이었다. 얼마 후 '우리 팀' 동부가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가자,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표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허재 감독의 현역 시절 등번호인 9번의 영구 결번 기념식이 열렸던 2004년 5월 2일은 내 18번째 생일이었다. 물론 내 생일잔치는 농구장을 가는 걸로 대신했다. 2011년에는 우리 가족이 선수단에 한우 고기 50인분을 선물했다. 선수들 체력 회복에는 한우가 최고라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었다.

심심하면 영화관을 찾듯, 우리 고향에선 경기장을 찾는 게 자연스럽다. 소도시라서 어디서나 경기장 접근이 쉬운 데다, KBL 구단 중 거의 유일하게 연고지에 머물며 훈련하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원주 시민은 한층 '충성심'을 갖는다.
우리 가족도 아주 빠르게 농구에 미쳐갔다. 스포츠광(狂)인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고교 야구' 선수들의 타율을 외웠던 엄마는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원정 응원을 다니는 건 기본, 녹화해둔 TV 중계를 몇 번이고 되돌려보면서 경기 분석에 여념이 없다. 나도 플레이오프 경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외국에서 음악회가 끝나자마자 비행기에 올랐다. 가끔은 리허설 시간을 바꿔가며 경기를 따라다니는 나 자신과 농구팀의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목소리마저 달라지는 우리 아빠 가운데 누구의 '증상'이 더 가벼운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묻는다. 뭐가 그리 좋으냐고. 예술과 기교가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에서 음악과 농구는 일맥상통한다. 공연에서 관객의 호응만큼이나 내실이 중요하듯, 스포츠도 승패를 떠나서 경기 내용을 잘 살펴야 한층 성장한다. 선수들이 관중의 기를 받아서 경기하듯, 연주자도 관객과 소통하면서 매 순간 음악을 창조한다.
10여년간 피아노 치는 것 말곤 별다른 취미랄 것도 없이 살아온 나, 고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딸을 원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원주로 데리고 다니며 하루를 30시간처럼 살았던 우리 엄마, 그런 모녀를 보며 하루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 우리 아빠, 덕분에 알아서 커야 했던 내 동생들…. 여행은커녕 당일치기 휴가 한번 못 가 본 우리 가족 모두를 경기장은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 가족은 박지현·이광재 선수의 빠른 경기운영에 환호하고, 이승준의 화려함에 놀라며, 김주성의 성실함과 근성을 다 같이 존경한다. 경기장은 기쁠 때 생각나고 슬플 때 그리운,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집'이다.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주야장천 쫓아다니며 그저 선수들의 부상만 없기를 바라는 이 '팬 라이프'가 행복이 아니면 무엇일까. 무대 위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은밀한 즐거움'이다.
☞손열음
1986년 원주 출생 피아니스트. 2009년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2011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며 차세대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2011년과 2012년 원주 동부 프로미가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머물자 “연속 2등이라니, 지금 그 기분 나밖에 모를 거야 ㅠㅠ”라고 트위터에 썼을 만큼 소문난 농구광이다.
우리 가족도 아주 빠르게 농구에 미쳐갔다. 스포츠광(狂)인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고교 야구' 선수들의 타율을 외웠던 엄마는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원정 응원을 다니는 건 기본, 녹화해둔 TV 중계를 몇 번이고 되돌려보면서 경기 분석에 여념이 없다. 나도 플레이오프 경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외국에서 음악회가 끝나자마자 비행기에 올랐다. 가끔은 리허설 시간을 바꿔가며 경기를 따라다니는 나 자신과 농구팀의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목소리마저 달라지는 우리 아빠 가운데 누구의 '증상'이 더 가벼운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묻는다. 뭐가 그리 좋으냐고. 예술과 기교가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에서 음악과 농구는 일맥상통한다. 공연에서 관객의 호응만큼이나 내실이 중요하듯, 스포츠도 승패를 떠나서 경기 내용을 잘 살펴야 한층 성장한다. 선수들이 관중의 기를 받아서 경기하듯, 연주자도 관객과 소통하면서 매 순간 음악을 창조한다.
10여년간 피아노 치는 것 말곤 별다른 취미랄 것도 없이 살아온 나, 고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딸을 원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원주로 데리고 다니며 하루를 30시간처럼 살았던 우리 엄마, 그런 모녀를 보며 하루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 우리 아빠, 덕분에 알아서 커야 했던 내 동생들…. 여행은커녕 당일치기 휴가 한번 못 가 본 우리 가족 모두를 경기장은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 가족은 박지현·이광재 선수의 빠른 경기운영에 환호하고, 이승준의 화려함에 놀라며, 김주성의 성실함과 근성을 다 같이 존경한다. 경기장은 기쁠 때 생각나고 슬플 때 그리운,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집'이다.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주야장천 쫓아다니며 그저 선수들의 부상만 없기를 바라는 이 '팬 라이프'가 행복이 아니면 무엇일까. 무대 위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은밀한 즐거움'이다.
☞손열음
1986년 원주 출생 피아니스트. 2009년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2011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며 차세대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2011년과 2012년 원주 동부 프로미가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머물자 “연속 2등이라니, 지금 그 기분 나밖에 모를 거야 ㅠㅠ”라고 트위터에 썼을 만큼 소문난 농구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