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뮤지컬·소설 동시 돌풍… '레 미제라블'엔 3가지 얼굴이 있다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3.01.09 02:01

400만·7만 관객, 20만 독자각 장르별로 이렇게 다르다
소설 - 인간사·철학 성찰 담은 현학적 강의 못지않아
뮤지컬 - 이야기 기본 뼈대에 음악으로 감동 살려
영화 - 클로즈업 활용으로 관객 감정이입 극대화

장발장은 1795년‘한밤중에 남의 집 창문을 깨고 도둑질한 죄’로 5년 노역형을 받았다가 네 차례에 걸친 탈옥 미수로 형기가 늘어나 19년간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레미제라블코리아·UPI코리아 제공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돌풍이다. 영화로는 400만명이 봤고, 소설(완역본)로는 20만권(민음사, 펭귄클래식, 동서문화사 합산)을 넘었다. 지난해 11월 용인에서 개막한 뮤지컬은 대구 공연 한 달 만에 5만 관객이 들었다. 현재까지 관객 총 7만명으로, 4월 서울 입성 때의 순항이 예고된다.

세 장르 모두 '장사'가 되는 것은 책과 영상 장르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 뮤지컬, 영화를 모두 보고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봤다.

◇소설에만 있다, 위고의 장광설

2000쪽이 넘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빅토르 위고(1802~1885)의 현학적인 강의를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 1권을 펼쳐들면 주인공 장발장은 나오지 않고 미리엘 주교 이야기가 90쪽이 넘도록 설명된다. 간신히 이 고개를 넘으면 100쪽에 걸쳐 워털루전투가 묘사되고, 결말을 기대할 쯤이면 파리의 하수도 묘사가 80쪽이나 나와 독서 의지를 시험한다. 이런 점 때문에 산만하다는 불평도 있다. 그러나 독자는 책장을 다 덮을 즈음에는 무릎을 치게 된다. 위고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딴 길로 샌 줄 알았던 장광설에 다 들어 있다. 워털루전투 묘사의 경우, 10여년 후 이어질 마리우스와 악당 테나르디에의 관계에 대한 복선(伏線)이다.

소설에 나온 샹브르리 거리의 바리케이드 장면은 실제 있었던 1832년 6월 5일 봉기를 다뤘다. 소설에서는 '현재와 미래가 단절되어 신(神)이 양끝을 잇지 못해서 발생했다'는 등의 설명으로 혁명의 기운이나 격정을 강조할 뿐, 구체적인 반대 대상을 밝히지는 않았다. 왕당파였던 위고는 1848년 2월 혁명을 계기로 철두철미한 공화주의자로 변신해 민중의 권력을 지지한다.

◇장발장의 양심 거울, 미리엘 주교

위고는 장발장의 마음에 평생 우뚝 서 있을 존재로 주교를 설정했다. 소설 속에서 주교는 이른바 실천적 종교인으로 묘사된다. 권위에 찌들어 부패한 교회 권력이 아닌, 민중을 보듬는 종교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주교는 어둠 속에서 썩어가던 장발장의 영혼에 선(善)과 양심, 희망과 연민의 불빛이 되며, 장발장과 헤어진 이후에도 두 개의 은촛대로 평생 그의 가슴에 남는다. 뮤지컬에서 주교는 은촛대를 건네주고 용서하는 미미한 역할이나,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다시 등장해 장발장의 영혼을 거두어간다.

◇또 다른 양심, 프티 제르베

소설에서 장발장의 양심을 일깨우는 또 다른 기호는 40수(sou·프랑스의 옛 화폐 단위) 은화다. 미리엘 주교의 집을 나온 장발장은 동전을 밟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가난한 소년의 돈을 빼앗게 된다. 영화에는 전혀 안 나오고, 뮤지컬에서는 웬만한 관객은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스쳐가듯 등장하지만, 소설에서는 장발장에게 양심의 가시 면류관이 된다.

◇죄수의 아들, 자베르

뮤지컬과 영화에서 자베르는 '나는 감옥에서 태어났다. 너와 같은 시궁창 출신'이라는 짧은 노랫말로만 자신을 설명한다. 소설을 보면, 그의 모친은 형무소에서 트럼프 점을 치는 여자였고, 부친은 항구 감옥의 죄수였다. 일찌감치 법적 테두리 바깥세상에 눈뜬 자베르는 역으로 악과 불법을 단죄하는 길을 선택한다. 가차없는 법의 수호자로 묘사되는 그는 무자비한 원칙을 자신에게도 적용한다. 소설에서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온다. 위고는 그가 장발장의 선의에 무릎 꿇게 함으로써, '가슴 없는 법전'을 단죄한다. 자베르를 통해 자신의 법 철학을 설파하는 셈이다.

◇독자의 선택은

소설 레미제라블은 공화주의자였던 빅토르 위고의 정치사상서라고 봐도 좋을 만큼 정치와 법, 인간의 운명에 관한 묘사가 방대한 양을 차지한다. 혁명 정신의 역동성에도 방점이 찍혔다. 뮤지컬은 장발장과 자베르의 대결,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등 절절한 인간애가 강조된다. 영화는 뮤지컬을 80% 이상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면서도 스펙터클한 민중 봉기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관객들의 '피'를 끓게 하는 연출법을 택했다. 독자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