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발장이 돌아왔다… 그대의 '불행' 위로하러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2.12.06 03:02

['레 미제라블', 소설·뮤지컬·영화 이어 김연아 피겨까지]
문화계 키워드로 급부상 - 소설 출간 한 달 만에 1만부
한국어 버전 뮤지컬 나오고, 가장 기대되는 영화 1위 올라
왜 인기 있나 - 장기불황·대선… 혼란의 시대
죄와 용서, 사랑의 드라마 통해 대중은 공감하며 위로받는 것

개봉을 앞둔 영화‘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휴 잭맨). 도망자의 삶이지만 다분히 종교적이고 장엄하다. /UPI코리아 제공
장 발장이 돌아왔다. 소설 번역본 출간 한 달도 안 돼 1만부 판매, 올겨울 가장 기대되는 영화 1위(인터파크·무비스트), 한국어 버전의 뮤지컬 개막, 피겨 여왕 김연아의 복귀작…. '레 미제라블'이 2012년 말 문화계의 키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시·공간을 넘어서야 불멸의 고전(古典)이라는 말씀은 지당하다. 그런데 '레 미제라블'은 지금 선택과 집중의 농도가 다르다. 영화 '레 미제라블'의 글로벌 개봉 박두(한국은 대선일인 19일)에 편승한 측면이 크지만 "사회경제적 불행을 위로받고 싶어하는 심리" "대선 정국과 잘 어울리는 소재"라는 해석도 나온다.

고전의 재발굴과 '공생(共生)'

고전의 재발견은 장르를 막론한 흐름이다. 소설 '레 미제라블'은 무려 5권, 2556쪽으로 다시 나왔다. "'레 미제라블' 원본이 이런 장편인 줄 몰랐다" "어떻게 다 읽느냐"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판매는 의외의 호조세. 뮤지컬, 영화 개봉의 덕도 적지 않다. 1만 부가 넘게 팔렸다. 책을 낸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디지털 시대가 아날로그적 자산을 포섭해가는 방식으로 고전을 다시 발굴하고 있다"면서 "영화나 뮤지컬 영향도 있지만 오래 기다린 잠재 독자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뮤지컬과 영화, 소설은 공생 관계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연출한 해럴드 프린스는 "영화 '오페라의 유령'이 개봉하고 나서 뮤지컬 관객이 20% 늘었다"고 말했다. '맘마미아!'도 같은 제목의 영화가 등장하자 특수를 누렸다. 올해 국내 뮤지컬 최고 흥행작인 '위키드' 덕에 소설 '위키드'는 7만5000부가 팔렸다.

뮤지컬‘레 미제라블’한국어 공연(왼쪽)과 소설‘레 미제라블’5권 세트. /KCMI·민음사 제공
뮤지컬 '미스 사이공' '지킬 앤 하이드'의 음악을 쓴 적이 있는 김연아는 20개월의 공백을 깬 복귀 무대의 음악으로 '레 미제라블'을 선택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이 선곡했지만 김연아가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있고 드라마틱한 음악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녀의 프리스케이팅 '레 미제라블'(4분10초)은 오는 8~9일 독일에서 열리는 NRW트로피 대회에서 처음 공개된다.

불행과 꿈에 대한 공감, 위로

'레 미제라블'의 재발견은 어쩌면 수전 보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수더분한 영국 시골 아줌마는 2009년 '브리틴스 갓 탤런트'에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삽입곡 '나는 꿈을 꾸었네'를 불러 단숨에 스타가 됐다. 마흔여덟 살에 그녀가 이룬 꿈 앞에 얼마나 길고 어두운 절망의 세월이 있었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죄수 24601'로 시작해 신부(神父)의 은을 훔쳤다 감화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장 발장의 드라마는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삼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뮤지컬과 영화를 제작한 캐머런 매킨토시는 2010년 '레 미제라블'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바탕으로 두 장르에 새 숨을 불어넣었다. 장은수 대표는 "장기 불황과 사회적 불행에 둘러싸인 시대라 대중이 장 발장으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얻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최혜실 경희대 교수는 "죄와 용서, 복수와 사랑 등 인간의 중요한 본성을 관통하는 주제가 다시 반복·변주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는 "세상을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레 미제라블'과 장 발장의 모험은 이번 대선 정국과도 어울리는 소재"라고 말했다.

원작자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 미제라블'(1862) 서문에 이렇게 썼다. "지상에 무지와 가난이 존재하는 한 이와 같은 성격의 책은 무용지물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