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하 앰프 사업, 지금부터 다시 시작"

  • 아트조선

입력 : 2012.12.05 16:03

야마하(Yamaha) 기타 앰프 THR 시리즈의 개발자 김성용 씨
그룹 넥스트 기타리스트 김세황 등 뮤지션과 사용자들 극찬 속 인기 '폭발'
기타 연주 실력도 수준급 "사용자가 개발한 앰프라서 성공한 듯"

음향기기를 만드는 일은 고도의 기술력과 경험이 필요하다. 작은 변화에도 크게 반응하는 까다로운 사용자의 입맛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입 장벽이 무척 높은 음향기기 사업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야마하(Yamaha)다. 일본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은 몇 십 년째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겐 피아노 등 악기로 익숙한 브랜드지만, 전자믹서 시장은 점유율이 80%가 넘을 정도로 절대 강자다. 이런 야마하가 유일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앰프다. 예전 한때 앰프 사업을 진행한 때가 있었지만, 현재는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상태다.

THR 시리즈는 야마하의 기타 앰프 사업에 다시 불을 지핀 기폭제(起爆劑) 역할을 하고 있다. 발매 첫 해에 2만 5천 대를 예상했던 것이 그 두 배에 가까운 4만 5천대 이상을 판매했다. 국내에는 올여름 처음 선보여 이미 주문이 수백 대 밀려있다고 한다. 얼마 전, THR을 소개하고 활용법을 알리는 세미나에는 수십 명의 사용자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야마하의 앰프 사업을 되살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한국인 개발자 김성용 씨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음악과 악기를 사랑한 그가 야마하에 입사한 건 우연한 계기였지만, 10년째 야마하 본사가 있는 일본 하마마쓰(Hamamatsu , 浜松)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인 음향기기 개발자는 야마하는 물론이고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일이다.

THR 세미나를 위해 10년 만에 고국을 찾은 그는 겸손하고 솔직한 성격으로 누구라도 호감을 느낄만한 인품과 여유로운 미소를 지녔다. 야마하 '인도스먼트 아티스트(Endorsement artist)'인 기타리스트 김세황 씨가 인터뷰를 직접 추천할 정도로 그의 업적은 독보적이다. 대학교 밴드부 출신으로 세미나에서 직접 기타 솔로를 선보일 만큼 뛰어난 실력의 ‘방구석 기타리스트’인 그를 만나봤다.

THR 개발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 현대적인 기타리스트의 연주 환경이 크게 변했다. 예전처럼 사각형 검정 앰프를 집에 가져다 두고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PC가 한 대씩 있고 인터넷도 다 되는 환경에서 주로 PC 앞에 앉아서 연습하고 있다. 유튜부(YouTube)를 보면서 혹은 MP3를 틀어놓고 연습을 한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 부합할만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개발을 시작했다.

야마하 기타 앰프 THR 시리즈를 한국인 개발한 김성용 씨./안병수PD absdizzo@chsoun.com

시중에 이미 많은 기타 앰프가 출시되어 있다. THR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별점이 있다면
- 시중에 나와 있는 앰프도 기타 소리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일명 '백킹(Backing)'이라 부르는 반주를 제대로 재생하는 것이 없다. THR은 야마하 오디오 기술이 그대로 적용이 되어 있어서 반주를 재생했을 때의 음질이 좋고 기타 소리도 훌륭하다. 동급 앰프 중에 이정도 음질을 낼 수 있는 제품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

김세황 씨가 THR을 실제로 써 보고 놀란 점 중 하나가 '지연시간(일명 랙·Lack)'이 없다는 것이었다.
- 타社 제품은 보통 가상 악기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PC로 처리를 한다. PC를 한 번 거쳐서 소리가 나니까 그만큼 시간이 걸려서 '랙'이라 부르는 지연시간(Latency)이 발생한다. THR은 앰프에서 만든 소리를 직접 PC로 보내는 것이라서 지연시간이 없다. PC는 단지 녹음기로서의 역할만 한다.

야마하를 비롯해 음향기기 개발자 중에 한국인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어떻게 일본까지 가서 개발자가 된 것인지 궁금하다.
- 일본으로 간 특별한 계기가 있진 않다. 한국에서 전산과를 졸업했고 일본어는 평소에 관심이 있어 공부하고 있었다. 유학을 목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다. 졸업 후 취업보다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쪽으로 좀더 공부를 하려고 보니 일본어를 알고 있었고 지식도 있고 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결정했다.
일본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고 나서도 일본에서 취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평소 음악과 악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2004년에 야마하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모집한 것을 보고 응모했다가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기타 앰프 개발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 처음 개발을 담당한 것이 전자 피아노와 키보드, 신디사이저 소프트웨어였다. 그러다 사내에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가 있는데 기타에도 조회가 있고 해서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다. 기타 앰프도 소프트웨어를 내장해야 소리가 나는 것이라서 그 부분을 맡게 됐다. THR 개발에 참여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총 세 명으로 그 중 기타 소리를 내는 쪽을 담당했다.

THR 개발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 틈새시장(niche market)을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개발했다. 설문조사 등을 거쳐 아주 많은 사용자가 PC 앞에 앉아 기타 연주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제대로 된 솔루션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을 시작했다.

THR로 굉장한 성공을 이뤘다. 야마하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
-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크게 흥분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솔루션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분명히 잘된다”라는 확신이 있었다. 만들면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커졌다. 나 자신도 ‘방구석 기타리스트’로 밴드도 잘 안하고 기타에 관심은 있으면서 PC 앞에서 연습하는 사용자로서 틈새시장이 보였다.

야마하 내에서 '앰프' 사업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나
- 야마하가 앰프 사업을 한 것은 예전 일이다. 평가는 좋았고 현재도 명기로 일컬어지는 기기도 있다. THR이 야마하의 앰프 사업을 다시 일으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야마하 ‘올해의 상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이미 실적도 상당하다.

잘 만든 기타 앰프가 앰프 사업을 다시 부활 시킨 셈이다.
- 기획도 잘 됐고 제품도 잘 나왔다. 그야말로 ‘돌아온 앰프 비즈니스’라 부를 수 있겠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 당분간은 앰프 담당자로서 개발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THR 사용자로부터 많은 의견을 받은 상태다. 이 것을 참고해서 다양한 제품군을 개발할 예정이다. THR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야마하의 '돌아온 앰프 비즈니스'를 위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려 한다. 이번에는 개발뿐만 아니라 제품 기획까지 같이 하게 됐다. THR은 개발 단계에서 마케팅, 기획, 디자인 등 다양한 관련 부서가 함께 참여했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야마하 내에서도 이런 일은 특이한 케이스다.

안병수PD absdizz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