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에 왕따였던 나… 나를 구한 건 '유령'이었다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11.29 01:58

7년 만의 내한 '오페라의 유령' 개막도 안 했는데 두달치 매진
팬텀役 브래드 리틀을 만나다
2200번 선 '오페라의 유령' 열등감 치유한 무대였죠
인삼·송편 선물하는 한국 팬 열정적 사랑에 늘 감동… '말춤' 약속, 진짜 지킬게요

"매진이 됐다니 정말 큰일이네요." 내달 7일 개막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벌써 12월과 내년 1월치 10만여석이 다 팔렸다. 개막도 하기 전 전석 매진은 유사한 사례가 드물다. 연말 성수기인 데다 7년 만의 내한공연이라는 점에 관객이 몰렸다. 그리고 팬텀 역의 이 남자, 브래드 리틀(48)의 인기도 한몫했다.

지난 26일 공연장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만난 그에게 "매진을 축하한다" 했더니 그는 '큰일'이라고 받았다. 지난달 제작발표회장에서 "매진되면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겠다"고 했기 때문. "몸치인 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한국 관객 만날 생각을 하니 흥분돼서 그랬나 봅니다."

2005년 내한 공연에 이어 '지킬앤하이드' '천국의 눈물' 등 국내 무대에 여러 번 등장해 한국 팬이 많다. 그가 한국을 찾으면 '빵(브래드)아저씨 드시라'며 몸 아플까 인삼을, 추석이면 송편을, 피로를 풀라며 목욕용 소금을 보내온다.

"한국 분들은 워낙 열정적이라 다른 나라에 가서도 알아볼 수 있어요." 2005년 상하이 팬텀 공연 때도 그랬다. 중국 관객은 공연 중 음식을 먹고 잡담까지 했다. 끝나고 나서도 심드렁한 박수만 나왔다. 기운이 빠지려는 찰나, 객석 저 구석에서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한국 관객 20여명이 열광하고 있었어요. 한국인에게는 예술을 즐길 줄 아는 기운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일그러진 외모를 가진 팬텀이 한 여성을 납치했으나, 후에 참다운 사랑에 눈뜬다는 내용. "따지고 보면 팬텀은 부녀자 납치범이다. 그의 사랑이 이해되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팬텀의 그런 점이 더 호소력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한 번도 제대로 사랑받아 본 적이 없고, 사랑한 적도 없어서 애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팬텀의 원시적 순수함에 끌리는 게 아닐까요? 아무도 그에게 가르쳐주지 않아서 표현이 거칠었을 뿐, 그의 마음은 공감할 수 있기에 전 세계 관객이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26일‘오페라의 유령’공연장인 블루스퀘어 분장실에서 거울을 바라보는 브래드 리틀. 팬텀이‘밤의 노래(Music of the Night)’를 부르며 크리스틴을 유혹하는 손짓(위 사진)이다. /채승우 기자
팬텀은 왕따였던 그의 열등감을 씻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난독증(難讀症)에 시달린 그는 학교 친구들에게 바보라고 놀림당하고 얻어맞았다. 그러다 20대에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펑펑 울었다. "팬텀이 저를 구해줬어요. 일그러진 얼굴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팬텀의 처지가 제 이야기로 느껴져서요. 아, 나도 바보가 아니구나. 내 안에도 찾아낼 것이 있겠구나, 깨달았죠. " 팬텀 역을 맡아 처음 무대에 선 것은 1996년. "첫 공연 땐 대사도 몇 줄 잊어버렸고, 연기도 완벽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무대 이후 완전히 다시 태어났어요." 그 후 2200번이 그에게는 자신감을 찾는 치유의 무대였다.

팬텀의 2월분 티켓 판매는 29일 시작할 예정. 이 표마저 다 팔리면 몸치 아저씨의 어색한 말춤을 봐야 한다. "제가 받은 사랑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는지 보여드릴 수 있다면 뭐든지…. 어색하더라도 제 마음으로 알고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