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21 23:46
마리스 얀손스 지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내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데, 지휘자는 갑자기 두 팔을 내리고 만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악단을 바라봤다. '단원들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신뢰의 표시로,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70)의 '전매특허'다. 관객들은 가속 붙은 롤러코스터에서 두 팔을 놓는 듯한 아찔한 황홀경에 빠져들게 된다. 지난 2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독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내한 공연에서 이 장면이 어김없이 재현됐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의 1악장이었다.
별도의 협연자 없이 베토벤 교향곡 2~3번으로 채운 이날 연주회는 신선한 배반의 연속이었다. 전반부의 교향곡 2번에서 더블베이스 4명을 포함해 무대 위에 오른 단원은 53명. 웅장한 대편성으로 사정없이 몰아칠 것이라는 기대는 단박에 무너졌다. 실내악을 확장시켜 놓은 듯한 단출한 편성이 되자, 매끈하고도 날렵한 현악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났다.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세계 평단의 오케스트라 순위 조사에서 상위권을 지키는 명문. 베를린 필이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한다면, 이 악단은 일사불란한 팀워크와 탄탄한 합주력을 앞세운다. 출력 좋은 차량은 복잡한 코너워크가 문제 되지 않듯, 교향곡 2번의 마지막 악장에서 지휘자 얀손스의 '막판 스퍼트' 지시에도 악단의 앙상블에는 균열 조짐이나 흐트러짐이 보이지 않았다.
이날 '영웅'은 미세한 무늬를 한 치도 틀리지 않게 정교하게 수놓은 직조물 같았다. 단락마다 강약과 템포 변화에 공이 들어갔다. 악단의 목관은 연주뿐 아니라 서로 고개를 드는 시간마저 일치했고, 단원들은 숙달된 '패턴 플레이'를 통해 들어가고 나가는 '타이밍'을 정확히 맞췄다.
2005년 베를린 필(지휘 사이먼 래틀) 이후, 내한 연주회 사상 최고의 '영웅'이라고 해도 좋았다. 앙코르인 하이든의 '세레나데'를 현악 합주로 곁들이면서,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건 역시 앙상블의 밀도라는 걸 상기시켰다. 앙코르가 끝날 즈음, 얀손스는 단원들을 바라보며 왼손을 꾹 쥐어 보였다.
[이렇게 봤습니다]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현악 4중주를 확대시켜 놓은 듯한 앙상블. 단원들 모두 서로 연주에 귀 기울이며 연주한다는 걸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악단의 밸런스가 놀라울 정도였다. 모든 악기가 살아 숨 쉬면서도 골고루 부각되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