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크 울린 '쑥대머리', 번역은 필요없었다

  •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김기철 기자

입력 : 2012.11.18 23:25

임방울국악제 역대 수상자들, 우즈베키스탄에서 공연

4000명이 가득 들어찬 대형 콘서트홀이 고요해졌다. 17일 오후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시내 이스치클롤극장. 정읍시립국악단 김찬미(37)씨가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일제강점기 민중의 한(恨)을 위로하던 국창(國唱) 임방울(1905~1961) 선생의 대표곡인 '쑥대머리'가 흘러나왔다. 75년 전 연해주에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까지 강제 이주당해 쓰라린 세월을 견뎌낸 고려인 동포들은 물론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까지 한의 정서에 전염된 듯했다. 타슈켄트 일간지 '할르크 소즈' 마브주다 헐르마토바(49) 문화 담당 기자는 "번역이 필요없는 노래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가슴이 아리다"고 말했다.

대우 마티즈가 '국민차'로 통하는 타슈켄트에 우리 가락과 춤이 울려 퍼졌다. 임방울국악제진흥회(이사장 김중채)가 1998년부터 올해까지 '임방울국악제' 역대 수상자 등 27명을 이끌고 타슈켄트에 상륙한 것이다. 임방울국악제는 판소리 명창 임방울 선생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개최되는 국악제다. 올해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정주(定住) 75주년과 대한민국·우즈베키스탄 수교 20주년. 임방울국악제 수상자들은 고려인 동포·우즈베키스탄 공훈 가수들과 번갈아가며 우정의 무대를 엮어냈다.

올해 임방울국악제 방일영상을 받은 김현주씨(대형화면) 등이 17일 타슈켄트에서 열린 순회공연에서‘새타령’등 민요를 부르고 있다. /김기철 기자
장호준(44) 광주시립국극단 수석이 이끄는 풍물패의 흥겨운 공연에 어깨를 들썩이던 청중들은 무궁화를 형상화한 부채춤이 시작되자 일제히 휴대폰과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올해 방일영상 수상자 김현주(41)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단원은 2000년 대통령상 수상자인 최연자(57)씨 등 선후배 소리꾼들과 함께 '새타령' 등 민요를 불렀다. 이정아(27)씨 등 역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자 3명이 꾸민 가야금병창도 인기였다. 한국에 유학 가는 게 꿈이라는 고교생 무니사 이사쿨러바(16)양은 "가야금 소리가 친근하게 들린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데, 얼마 전에 본 드라마 주인공이 가야금 전공자라는 것이다. 드라마와 가요로 시작된 한류가 전통문화로 확산될 조짐이 보였다.

다음 달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앞둔 '아리랑'은 고려인 동포들의 단골 곡목이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공훈가수인 신 갈리나씨 등 동포 가수들은 '강원도아리랑'을 가요풍으로 흥겹게 불렀다. 피날레는 우리 측 출연자 모두가 나선 '진도아리랑'으로 마감했다. 김중채 임방울국악진흥회 이사장은 "우리 가락을 고려인 동포들이 많이 사는 우즈베키스탄에 소개하게 돼 더욱 뜻깊은 공연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