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붓이 지난다 대자연의 결이 꿈틀

  • 곽아람 기자

입력 : 2012.11.05 23:18

이화여대 오숙환 교수, 이중섭미술상 수상展
대자연·시간에 천착한 30년 5년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엔 2m 넘는 '천지' 등 30여점 전시
"이중섭, 작품 팔리면 그랬다죠… 나중에 더 잘 그려 바꿔주겠다… 지금 제 마음이 꼭 그렇네요"

지난달 31일 이화여대 오숙환(60) 교수 연구실. 열 평 남짓한 방엔 컴퓨터 한 대뿐, 가구는 하나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려니 방이 좁아서 가구를 싹 내놓았어요." 그의 작업실은 지난 5월 올해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8일 개막하는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을 맞는 각오가 읽혔다.

"수상 통보를 받고 기뻤던 것은 잠시, 불과 반년 만에 조선일보미술관 100평이 넘는 전시공간을 알차게 채워야 한다는 점이 엄청난 부담이 됐어요. 30년 그림을 그렸지만 '이중섭'이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감도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8월부터는 가구를 모두 치우고 작업에만 매달렸습니다. 주말에도 밤 10시 이전에는 귀가하지 않고 그렸어요."

자연의 호흡, 그리고 시간의 기록. 그의 화업 30여 년을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이렇게 요약될 것 같다. 2007년 이후 5년 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신작 '천지(天地)' 시리즈, 1990년대 작업인 '사막' 시리즈 등 모두 30여 점을 선보인다. 가로 214㎝, 세로 102㎝의 큰 화면에 먹으로 구름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땅과 그에 휩싸인 하늘을 표현한 '천지'는 원래 백두산 천지(天池)의 형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늘과 땅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평소 땅만 보고 사느라 바쁜 사람들은, 하늘과 땅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땅은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은 땅을 내려다보고 있잖아요. 드넓은 우주적 공간에서 땅이 하늘의 품에 안겼다가, 나왔다가…. 거대한 대자연의 그런 신비함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오숙환의 2012년 작‘천지’. 한지에 수묵으로 그린 이 그림은 가로 214㎝, 세로 102㎝. 하늘과 땅의 융합을 형상화했다. /오숙환 교수 제공
전시에 출품되는 '빛과 시공간' 시리즈는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사막, 그리고 그 사이 비친 한 줄기 빛을 그린 그림. 오 교수는 "사막이란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가장 넓은 공간이다. 바람이 지나가며 사막에 여러 모양의 자국을 남기는 것을 보면서, 신(神)이 허락한 세상의 모든 형상이 그 안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전에서 대상을 받은 1981년 이후 30년 넘게 '빛을 그리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일견 변화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 교수는 "작업에서 찾는 것은 새로움이라기보다는 감동"이라고 했다.

흰 종이 위의 시커먼 형태. 화려하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오 교수의 그림에선 그러나 세련된 우아함이 묻어난다. 먹을 갈아 냉장고에 보관해 굵은 입자가 가라앉은 다음 맑은 먹만 쓴 결과다. 진한 획 한 번이 아니라 부드럽게 여러 번 칠하고 물을 뿌려 잔잔히 퍼진 따뜻한 색깔들이다.

30년을 천착해온 주제 '빛', 밤낮없이 전시 준비에만 매진한 6개월의 시간…. 그러나 그는 뜻밖에 "이번 전시가 저 개인적으론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남들이 뭐라 한 것이 아니다. "이중섭 화백은 전시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구입하는 고객에게 그랬다지요? '나중에 더 잘 그린 그림으로 바꿔 드리겠다'고요. 지금 제 마음이 꼭 그렇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전시작들과 애증관계라고 할까요. 다음엔 훨씬 나은 그림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