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이 사람과] '연극 여왕' 서주희… 뮤지컬 신인 배우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10.26 23:1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출연]
하루도 울지 않은 날 없었죠, 개막 다가오니 겁나더라고요
이제는 후배들 돌봐줄 나이… 유모·주모 전문배우 되고 싶어

"이 서주희가 그 서주희야?"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출연진 명단을 보고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연인 주막 여주인 역할이 배우 서주희(46)였다. 대중에 알려진 서주희는 연출가 한태숙의 연극 '레이디 맥베스'에서 밀가루 반죽을 칭칭 감고 나온 강렬한 주역이거나,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색깔 있는 여주인공이었다.

'그 서주희'가 1989년 데뷔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했다. 25일 '베르테르' 개막 공연을 마친 그를 공연장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 웃으며 나타난 그는 "매일 좌절하다 못해 땅굴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25일 뮤지컬‘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공연장인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서주희는“뮤지컬‘위키드’의 이중적인 마법학교 학장 역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1997년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2010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기상, 2011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 상장 위에 드러누워 편안히 살아도 될 텐데, 굳이 생소한 판에 뛰어들어 초짜의 고생을 미어터지게 한 것이다. "뮤지컬 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다. '행복한 왕자'라는 뮤지컬을 올리려고 계획 중이라, 현장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연기 인생 23년 만에 뮤지컬 도전

장르도 다르지만, 역할도 조연이다. 나이가 들었으니 조연은 당연한 수순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게 순리라도, 자아가 강한 배우에게 결코 쉽지 않은일이다. 게다가 여배우가 아닌가. 그런데도 서주희는 말했다. "앞으로는 유모와 주모 전문배우가 되고 싶다. 뮤지컬 보면 늘 어린 배우가 나이 든 역할을 해서 아쉬웠다. 남들 안 하면 나라도 하겠다."

25일 '베르테르' 첫 무대에서 서주희는 커다란 술통을 밀면서 등장했다. '나도 왕년에 연애 좀 했어'라고 목청을 뽑고, 허리를 흔들고 치마를 펄럭이며 춤도 춘다. 데뷔 무대였으나, 오랜 무대 연륜이 엿보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게 서주희의 고백이다. "개막이 다가오니 겁이 났다. 남들 몰래 옥상 가서 매일 울었다." 들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의 절반을 차지한 것이 약봉지다. 수면제, 공황 장애 치료제, 우울증 치료제가 잔뜩 들었다.

◇내달 SBS '드라마의 제왕' 출연

방송을 다시 시작한 것도 고생을 부풀렸다. 내달 시작하는 SBS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출연 김명민·정려원 등)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드라마 작가로 나온다. 천정부지 원고료를 요구하고 돌아서서 머리를 쥐어뜯는 캐릭터다.

원래 그는 KBS 공채 탤런트로 들어갔다가 일찌감치 그만뒀다. "내가 못생겼으니까. 게다가 글래머라 옆모습을 잡으면 뚱뚱해 보이고." 첫 방송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공채 동기 중 처음으로 캐스팅돼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출연했다. 첫 방송 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빵집에 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빵 시켜놓고 TV를 보는데 가게 종업원이 서주희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한마디를 날렸다. "어우, 저 못생긴 애 왜 자꾸 나와? 짜증 나게." 서주희는 "그것이 정확한 시청자의 의견이었다"며 "연기 잘한다는 얘기 듣게 된 것도 살아남을 방법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해 죽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년간 '철저하고 완벽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화살을 쏘면서 살았다. '이런 배우가 돼야 해'가 유일한 목표였다. 이제는 그렇게 달리면서 느낀 성공과 좌절의 경험을 전해주고 싶다. 배우란 귀한 화초와 같다. 물 한 번만 줘도 신기하게 다시 피어난다. 후배에게 물 뿌려주는 선배가 되는 게 목표다. 그래야 제 가치도 올라가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