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생 50년 난 언제쯤 훌륭한 배우 되지?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10.20 03:04

전무송, 연기 50주년 기념극 '보물'… 내달 8일부터
딸·아들·사위랑 만든 이번 극 내 일생을 무대에 그렸다더군
1962년 시작된 배우 생활 배고픈 백수시절도 있었지
상 많이 받았지만 대배우 아냐 아직 훌륭한 사람 못 됐으니…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1989)의 블라디미르(뒤쪽)로 출연할 때의 모습. /LSM컴퍼니 제공
반 백년 무대를 지켜온 배우는 '대배우'라는 말이 나오자 손사래를 쳤다. "나 대배우 아냐. 절대로 그렇게 쓰지 마." 이해랑연극상, 동아연극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 연기로 받을 만한 상은 다 받았는데도 "아직 이루지 못한 큰 꿈이 있다"고 했다. "나도 언젠가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어. 그런데 여전히 까마득한 것 같아."

아직도 훌륭한 배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 전무송(71)이 내달 8일 연기 인생 50주년 기념극 '보물'(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을 올린다. 연극 연습 중 갑자기 쓰러진 후 묻혔던 비밀이 드러나게 되는 노배우 역이다. '보물'은 전무송의 딸 전현아가 극본을 쓰고, 아들 전진우가 출연하고, 사위 김진만이 연출하는 온 가족 총출동 작품. 1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연습실은 그가 내뱉는 대사로 쩌렁쩌렁 울렸다. 연극 소품이 잔뜩 든 가방을 들고 연습실을 가로질러 오가는 걸음은 힘이 넘쳤다. "기념작이라고 하니 다들 명작을 올리라고 했는데, 일부러 소품을 골랐어. 자식들이 '우리가 본 아버지 일생을 무대에서 그려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연극은 화장 안 한 예술, 세련되지 않아 아름다워

1962년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 1기생으로 입학하면서 시작된 연극 인생이다. 그림 그리면 환쟁이, 글 쓰면 폐병쟁이던 시절, 예술은 배를 곯아야 나온다던 시절에 힘들었던 일화가 '보물'에 살아있다. "현아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어. 일이 없어서 매일 놀고 있었지. 하루는 무료해서 벽에다 현아 보여주려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어. 숲이 무성하고 새가 날고 호랑이가 어흥 했지. 하교한 딸이 좋다고 난리였어." 신이 난 딸은 학교에 가서 자랑했다고 한다. "우리 아빠는 매일 집에 있다!" 아빠가 백수라고 광고한 꼴이었다. 담임교사에게서 그 말을 전해 들은 아내는 가슴이 무너졌다. "연극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풀빵장사라도 하겠다고 했지. 아내가 울면서 말렸어. 배우 전무송하고 결혼했지, 장사꾼 전무송하고 한 거 아니라고,"

그는 "연극이 아내 같아서 좋다"고 했다. "미팅에서 처음 만났는데 까무잡잡한 얼굴에 화장을 전혀 안 했어. 순박했지. 연극도 비슷해. 다른 예술 하는 사람들은 매우 세련됐어요. 말도 잘하고 화장도 곱고. 그런데 연극인들 보면 말도 못해, 세련미도 없어. 그런데 그래서 좋아. 아름다워."

호기롭던 20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적이 많았다. 주역만 맡다가 한 번은 언더스터디(대역)가 됐다. 화가 나 술을 잔뜩 마시고 지하연습실에서 술병을 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술이 깬 그에게 스승인 동랑 유치진이 남긴 가르침이 평생의 기둥이 됐다.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인간이 되라'고 하셨지. 아직 난 훌륭한 인간이 못 됐어. 그러니까 훌륭한 배우도 아닌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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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만난 배우 전무송은 “연기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연습”이라며 “언젠가 꼭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언젠가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어"

배우로서의 그의 매력을 유치진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관객이 널 보면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게 무기요 재산이니 잘 발휘해 봐라." 그래서인지 그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역을 많이 했다. 하멸태자, 블라디미르(고도를 기다리며), 세일즈맨 윌리(세일즈맨의 죽음) 등 대중이 기억하는 역할도 비슷한 분위기다. 전무송은 "내게도 지킬과 하이드처럼 악한 면이 있는지도 모른다"며 "언젠가 제대로 된 악역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연극만 하다 다른 분야로 지평이 넓어진 게 영화 '만다라'(감독 임권택)였다. '만다라'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받을 때, 나이 마흔이었다. 그 무렵, "밤 무대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노래는 두 곡만 하면 되고, 그냥 서서 얘기 좀 하다 내려가면 된다고 했다. 싫다고 했더니 "메뚜기도 한철인 걸 모르느냐"고 했다. 그래서 응수했다. "나 메뚜기 아냐, 전무송이야."

그에게 배우는 고정된 직업명이 아니라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의 다른 이름이다. "이미 배우가 됐다고 하면 나아갈 수가 없어. 거길 향해 끊임없이 가는 게 죽을 때까지 내가 놓지 않을 숙제야. 이번 작품도 허점이 있겠지. 안 될 때 왜 안 되느냐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해. 고통 끝에 초조하게 막이 올라가고, 끝난 다음에 박수가 나오고. 그 고통, 그 희열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