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드디어 만난 두 남녀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10.17 23:32

배종옥·조재현 첫 호흡…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전쟁터를 누비던 기자였던 여자는 나이 쉰을 맞으며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생의 끝에 다다랐다는 생각에 자서전이나 써볼까 한다. 자서전은 온통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30년간 사랑하고, 미워하고, 갈망하고, 원망했던 남자. 내 딸의 아버지. 딴 여자의 남편.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를 다시 찾아온 남자는 매주 목요일 만나자고 제안한다. 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자고. 다가올 목요일은 둘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까? 바꾸긴 바꿀까?

내달 23일 개막하는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작·연출 황재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쉽게 해독하기 어려운 관계의 다차원 방정식을 풀어나간다. '해법'은 돌아온 배종옥(48)과 조재현(47)이 보여준다. 둘 다 2년 만의 연극 무대. 배종옥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로, 조재현은 '에쿠우스'의 다이사트 박사로 나왔었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난 배종옥은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니 떨린다"고 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조재현도 맞장구를 쳤다. "다리가 후들거리죠. 그래도 우리는 배우니까, 무대에 서야죠."

내달‘그와 그녀의 목요일’로 처음 한 무대에 서는 배종옥과 조재현은 오래된 친구처럼 스스럼없었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서. /예술의전당 제공

드라마와 영화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돈도 버는 배우에게 연극이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돈은 안 되는데, 시간은 엄청나게 들어간다. 흔한 말로 '매니저 기름값도 안 나온다'. 해놓고 좋은 소리 듣기도 쉽지 않다. 한마디로 잘해야 본전. 그런데도 둘은 다시 연극을 택했다.

연극이 무엇이기에? "연극이 하고 싶어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는데, 그 마음이 평생을 가나 봐요."(배종옥) "논리적으로 따지면 설명이 안 돼요. 편하게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것 같아요."(조재현)

이날은 '목요일'의 두 번째 연습 날. 연습실에 모인 두 사람은 서로의 대사를 한 줄 한 줄 짚어가며 의견을 제시했다. 조재현은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매력적인 대본"이라고 했다. "연극은 대본만 읽고는 와 닿기가 쉽지 않은데, 행간에서 느껴지는 경쾌함이 좋았어요." 그가 말하는 경쾌함에는 고정되고 갇힌 관계의 틀을 넘어서는 열린 시각이 담겨 있다. 배종옥은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두 사람처럼 다양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시선만 던져줘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배종옥이 맡은 여주인공과 그 딸의 관계도 기존 작품과 다르다. 맹목적인 희생을 바치는 어머니가 아니라, 적당히 무심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속으론 아낀다. "사실 엄마와 딸은 자주 싸우는 거 아닌가요? 제가 희생만 한다고 해서 제 딸이 고마워할까요? '왜 그랬어?' 할 수도 있죠."

두 사람이 처음 본 것은 21년 전. 정확하게는 조재현만 배종옥을 봤다. 그것도 30m 거리에서. '젊은 날의 초상'(감독 곽지균) 촬영장인 중앙대에서 주연배우 배종옥을 본 조연배우 조재현은 '섹시하고 까무잡잡한 올리브(뽀빠이의 연인)'라고 생각했다. "언제 한번 작업해봐야지, 늘 생각하다 드디어 때가 왔네요." 마치 소개팅에라도 나온 듯, 고향을 묻고 확인하던 두 사람은 약속한 듯 말했다. "아, 우리 진작 만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