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0.14 23:39
23일 내한, 지휘자 페도세예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난 9세… 다친 병사들 앞에서 연주했지
소련 붕괴 후에도 모스크바 남아 38년째 방송 교향악단 이끌어
"내겐 가족이고 자식 같은 존재"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히틀러의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했다. 독일군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위했지만, 소련군과 시민의 저항으로 레닌그라드 공방전은 무려 900일 가까이 계속됐다. 이 도시에서 태어난 아홉 살 소년 페도세예프도 아버지에게 배운 아코디언을 들고 야전병원을 돌아다녔다. "다친 병사들 앞에서 러시아 민속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도 불렀어. 학교가 문을 닫았으니 선생님도 없었고, 아버지에게 배운 아코디언이 전부였지. 내 인생 첫 번째 콘서트 무대는 야전병원이었어."
이 소년이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을 38년째 이끌고 있는 러시아 지휘자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80)다. 13일 일본 도쿄 인근 가마쿠라 예술회관에서 만난 그는 "올해 여든이지만 독일과 스위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에서 매년 120여 차례의 음악회를 열고 있다. 삶에 '멈춤(stop)'이란 없다"고 말했다. 전쟁과 소비에트 체제의 격랑을 온몸으로 부딪쳤던 그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등과 함께 작업해서 '러시아 음악사의 산 증인'으로 꼽힌다. "쇼스타코비치는 타계 4년 전인 1971년에 그의 작품을 녹음 중이던 우리 악단의 스튜디오를 찾아왔어. 그는 지성미로 가득했지만, 무척 내성적이었지. 지휘자에게 단 한 번도 지시하거나 요구한 적이 없었어. 연주가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언제나 '좋다'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지."
페도세예프는 "레닌그라드가 포위됐을 당시 매일 라디오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들었지만, 너무나 어려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그의 작품을 이해하게 됐고, 지금은 평생 사랑하는 작품들이 됐다"고 말했다.
이 소년이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을 38년째 이끌고 있는 러시아 지휘자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80)다. 13일 일본 도쿄 인근 가마쿠라 예술회관에서 만난 그는 "올해 여든이지만 독일과 스위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에서 매년 120여 차례의 음악회를 열고 있다. 삶에 '멈춤(stop)'이란 없다"고 말했다. 전쟁과 소비에트 체제의 격랑을 온몸으로 부딪쳤던 그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등과 함께 작업해서 '러시아 음악사의 산 증인'으로 꼽힌다. "쇼스타코비치는 타계 4년 전인 1971년에 그의 작품을 녹음 중이던 우리 악단의 스튜디오를 찾아왔어. 그는 지성미로 가득했지만, 무척 내성적이었지. 지휘자에게 단 한 번도 지시하거나 요구한 적이 없었어. 연주가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언제나 '좋다'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지."
페도세예프는 "레닌그라드가 포위됐을 당시 매일 라디오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들었지만, 너무나 어려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그의 작품을 이해하게 됐고, 지금은 평생 사랑하는 작품들이 됐다"고 말했다.

서방 행(行)을 택했던 몇몇 음악인과 달리, 페도세예프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도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을 지켰다. 그는 "젊은 단원들이 자라서 결혼하는 것까지 지켜봤다. 내겐 모두 '가족'이고 '자식'과 다름없다. 자식을 버리는 가장은 없다"고 했다.
그의 정통 러시아 사운드는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전곡(6곡)은 4차례나 녹음했고, 러시아 지휘자 가운데 처음으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도 음반으로 남겼다. 페도세예프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4곡)은 체코에서 단 이틀 만에 녹음을 마친 적도 있다"면서 웃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4곡)을 녹음했다. 그는 "이전까지는 잘 몰랐지만 녹음을 하면서 백건우가 '위대한 대가(virtuoso)'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13일 일본 음악회에서 그는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교향곡 '비창'을 택했다. 9대의 더블베이스를 오른쪽 구석 대신 무대 뒤편 한복판에 배치하는 특유의 포진을 선보이자, 낮고 둔중한 더블베이스로 시작하는 1악장 도입부에 한층 짙은 음영이 깔렸다. 교향곡이 끝난 뒤 박수가 끊이지 않자, 러시아 민속 음악의 향취로 가득한 스비리도프의 '눈보라' 모음곡 가운데 '왈츠의 메아리'를 앙코르로 선사했다. 70여 년 전의 소년처럼, 지휘봉을 잡은 그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 내한 공연, 2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599-5743
그의 정통 러시아 사운드는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전곡(6곡)은 4차례나 녹음했고, 러시아 지휘자 가운데 처음으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도 음반으로 남겼다. 페도세예프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4곡)은 체코에서 단 이틀 만에 녹음을 마친 적도 있다"면서 웃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4곡)을 녹음했다. 그는 "이전까지는 잘 몰랐지만 녹음을 하면서 백건우가 '위대한 대가(virtuoso)'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13일 일본 음악회에서 그는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교향곡 '비창'을 택했다. 9대의 더블베이스를 오른쪽 구석 대신 무대 뒤편 한복판에 배치하는 특유의 포진을 선보이자, 낮고 둔중한 더블베이스로 시작하는 1악장 도입부에 한층 짙은 음영이 깔렸다. 교향곡이 끝난 뒤 박수가 끊이지 않자, 러시아 민속 음악의 향취로 가득한 스비리도프의 '눈보라' 모음곡 가운데 '왈츠의 메아리'를 앙코르로 선사했다. 70여 년 전의 소년처럼, 지휘봉을 잡은 그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 내한 공연, 2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