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도발? 관객 끓어오르게 하는 게 내 음악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10.10 23:44

[다음 달 첫 내한 독주회 여는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
피아노 뚜껑 닫고 연주 시늉… 유명 협주곡 패러디하는 등
궤도 이탈한 현대음악 연주자 "내게 예술은 끊임없는 질문"

지난 2010년 10월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의 일요 아침 음악회. 초대받은 피아니스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알프레드 브렌델(81)과 프랑스의 피에르 로랑 에마르(55)였다.

두 거장은 '도발'을 선물했다. 브렌델은 '모차르트'라는 자작시를 낭송했다. "모차르트가 살해당했다는 걸 알지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자가 베토벤이었다는 건 하이든조차 몰랐다네." '햄릿'과 '아마데우스'를 묘하게 버무려놓은 그의 시에 객석에선 낮은 탄성이 일었다.

에마르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건반을 치는 시늉만 내는가 하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리며 패러디했다. 객석 한편에서는 폭소가 이어졌지만, 한편에서는 코 푸는 소리를 내거나 연주 도중 문을 닫고 나가는 관객도 있었다.

9일 전화 인터뷰에서 에마르는 "나는 예술이 그저 관습이나 일상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 유머와 부조리, 유희를 통해 예술은 관습에 거스르고 질문을 던지며 새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첫 내한 독주회를 갖는 프랑스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는“누구나 연주하는‘베스트셀러’는 사절이며 다른 사람들이 쉽사리 연주하지 않는 곡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현대음악의 앙팡 테리블'로 불리는 그는 음악에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이른바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 "다섯 살 때 만난 음악 선생님은 플루트와 오르간 연주자이자 극장 작곡가였어요. 그의 교육 방식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곧바로 메시앙과 슈토크하우젠, 리게티의 1960년대 현대음악이나 북아프리카와 인도의 음악을 들려줬으니까요. 그의 음악 수업에는 국경도, 장르도, 시기도 없었어요."

그런 에마르가 체르니 소나타 대신 7세부터 쇤베르크의 작품을 연주하고, 8~9세부터는 불레즈와 슈토크하우젠의 현대음악 악보를 들여다본 것은 자연스러웠다. 12세 때는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의 부인이자 빼어난 건반 연주자였던 이본 로리오 교수에게 발탁되어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에마르는 "당시 로리오 여사의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어렸다. 처음 3년간은 메시앙 부부를 부모님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작품을 연주했다"면서 웃었다.

에마르가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린 건, 19세 때인 1977년 현대음악의 거장 피에르 불레즈가 이끄는 '앙상블 엥테르콩탕포렝'에 창단 멤버로 들어가면서다. 그는 18년간 이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현대음악 전문 연주자'로 뚜렷이 각인됐다.

그의 '음악 시간표'는 남들과는 거꾸로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을 마흔 중반에야 처음 녹음했다. 에마르는 "누구나 연주하는 '베스트셀러(bestseller)'는 사절이다. 언제나 연주는 살아있는 느낌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 달 첫 내한 독주회 리스트는 다행히 리게티의 현대음악과 슈만·드뷔시의 고전이 조화를 이룬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음악 신조를 꼽아달라고 하자, 에마르는 주저하지 않고 '강렬함' '메시지' '새로움'을 들었다. "음악은 차갑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펄펄 끓게 해야 하고, 언제나 청중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에르 로랑 에마르 내한 독주회, 11월 25일 오후 5시 LG아트센터,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