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0.10 23:24
김유정 원작 오태석 연출 '봄봄'… 춘천 이어 서울공연 28일까지
'철이 덜 들었다'는 말은 그가 자신을 두고 자주 쓰는 말이다. 그의 가슴에는 '철이 덜 든' 맑은 추억을 모아놓은 방(房)이 있다. 고향 서천의 추억과 언어가 살아있는 그 방의 문은 지난 50년간 수시로 닫혔다 열렸다.
이번에 새로 문이 열리며 나온 음악극 '봄봄'이 9일 남산국악당에서 서울 첫 공연을 조용히 올렸다. 춘천시문화재단(이사장 최지순) 지원으로 김유정 소설 '봄봄'과 '금 따는 콩밭'을 엮었다. 각색과 연출을 오태석이 맡고, 극단 목화의 배우들이 나온다. 지난 6월 춘천 공연은 매진이었다.
오태석은 "김유정은 항상 내 가슴 근저에 있던 작가"라고 했다. "김유정 소설에는 암담했던 1930년대 삶의 얼룩을 웃음으로 털어내던 무지렁이들의 해학이 살아있으니까요."
'봄봄'에는 관객의 가슴을 잃어버린 순수의 시절로 데려가려는 연극계 거장의 소망이 담겼다. 노래는 20여곡 나온다. 서양 음악에 익숙한 이들의 귀에 쉽게 들리도록 25줄 가야금에 선율을 맡겼다. 시골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흥얼거리던 가락처럼 하나같이 해맑고 경쾌하다.
이번에도 비속어·외계어에 멍든 우리말을 불러내는 오태석의 애정이 펄럭인다. '여기 이 정겨운 말들 좀 들어보시게'라며 흔드는 애달픈 깃발인 양, 무대 중앙의 자막기가 번쩍이며 가사를 보여준다. "자던독사 잠깨면/ 죽어죽어 울지마/ 깨밭에서 깨노세/ 콩밭에서 콩노세/ 참깨들깨 노는데/ 아주깨는 못노나."
오태석 특유의 압축과 생략이 없어, 무대 어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푸근한 초대가 될 것 같다. 어릴 적 시골 고향에서나 보았던 정경을 세밀화로 그리듯 아기자기하고 정겹게 보여준다. 삼삼오오 마당에 모인 아낙들은 솥뚜껑을 뒤집어 기름이 잘잘 도는 지짐이를 부치고, 옆에서는 작두펌프로 길어올린 물에 파랗고 뽀얀 배추를 씻는다. 도란도란 이야기라도 나눌 듯 올망졸망 장독대는 당장 달려가 곁에 앉고 싶어진다.
오태석은 "이번 작품이 호응을 얻어서, 지방 연극이 영서지방에서 영남으로, 호남으로, 봉화처럼 발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연극계에서 둘도 없는 독창적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칠순 거장은 악수하던 손을 놓았다가 다시 잡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봐줘서. 용기를 줘서."
▷음악극 봄봄, 28일까지 남산국악당, (033)262-1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