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9.25 22:26
한 농부가 곡식을 가득 얹은 손수레를 밀고 있다. 추수를 기다리는 들판만큼이나 따스한 느낌의 황금빛 햇살이 온 화면에 스며들었다. 돌담이며 농기구, 담장 위로 수북하게 피어난 꽃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결코 초라하거나 궁핍한 기색이 없는 평온한 농촌 풍경이다. 이는 흔히 '농부 화가'로 잘 알려진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cois Millet·1814~1875)의 작품이다.
눈길을 잡아끄는 새파란 바지를 입고 외바퀴 수레를 능숙하게 다루는 농부의 뒷모습은 여유로우면서도 굳건하다. 밀레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농부가 그렇듯이,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밀레는 한 사람의 개성적인 초상화가 아니라 노동, 그중에서도 땅을 일구는 농사일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그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오직 온몸을 움직여 힘들게 일한 만큼만 가져가는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의 고귀한 가치를 이처럼 이상적인 농부의 상(像)을 통해 표현했다.
눈길을 잡아끄는 새파란 바지를 입고 외바퀴 수레를 능숙하게 다루는 농부의 뒷모습은 여유로우면서도 굳건하다. 밀레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농부가 그렇듯이,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밀레는 한 사람의 개성적인 초상화가 아니라 노동, 그중에서도 땅을 일구는 농사일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그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오직 온몸을 움직여 힘들게 일한 만큼만 가져가는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의 고귀한 가치를 이처럼 이상적인 농부의 상(像)을 통해 표현했다.

그러나 밀레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의 프랑스에서는 이미 산업화와 기계화의 물결이 농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대규모 자본으로 기계와 저임금 인부들을 동원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가들의 각축장이 된 것이다. 밀레의 그림이 각광을 받았던 것은 그 속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존재, 즉 평온한 농촌과 건실한 농부에 대한 향수의 소산이었다.
밀레의 그림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온 국민이 전력을 다하던 1960~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국민 대부분이 농부의 자식이던 시기였다. 쌀은 논이 아니라 마트에서 난다고 믿는 요즘 아이들 눈에는 밀레의 그림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밀레의 그림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온 국민이 전력을 다하던 1960~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국민 대부분이 농부의 자식이던 시기였다. 쌀은 논이 아니라 마트에서 난다고 믿는 요즘 아이들 눈에는 밀레의 그림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