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0.04 00:05
상징·은유의 향연 '(아)폴로니아' - 폴란드의 나치 대학살 배경, 신화·문학적 메타포 쏟아져
파병 군인의 悲歌 '블랙워치' - 뮤지컬 '원스' 연출가 작품, 섬세한 동작… 다큐 보는 듯
지적(知的)인 자극과 도전을 즐기는 이들을 위해 이 가을, 강한 호적수(好敵手)가 나타났다. 명불허전이라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폴란드 연극 '(아)폴로니아((A)pollonia)'와 스코틀랜드국립극단의 '블랙워치'는 '놓치면 (후회로) 땅 친다'고 알려진 하반기 내한 공연 중 최대 화제작이다.
◇5시간…지적인 고통의 파티
명망 높은 유럽 현대극 연출가인 크쥐스토프 바를리코프스키(50)가 연출한 '(아)폴로니아'는 웬만한 열혈 관객도 머리를 싸맬 만큼 길고 난해한 서사극이다. 일상의 시름을 극장에서 잊으려는 관객의 뒤통수를 가차없이 후려친다. 위안이 아니라 지적인 고통과 해석의 산고를 안긴다. 그것도 4시간 30분 동안. 주최 측은 "이러다간 5시간 된다"고 걱정 중이다. 온 나라에 부는 힐링 열풍에 반(反)하는 안티 힐링극이라 할 만하다.
제목부터 까다롭다. 괄호는 왜 붙었을까? 아폴로니아는 여주인공의 이름. 영어 철자 A를 뺀 '폴로니아'는 폴란드를 가리키는 언어유희다. 배경은 나치 대학살. 유대인 20명을 살리려다 죽임을 당하는 아폴로니아, 아이스킬로스가 쓴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이피게니아, 에우리피데스의 알세스티스가 나온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존 쿳시의 소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속 주인공 엘리자베스도 등장한다.
◇5시간…지적인 고통의 파티
명망 높은 유럽 현대극 연출가인 크쥐스토프 바를리코프스키(50)가 연출한 '(아)폴로니아'는 웬만한 열혈 관객도 머리를 싸맬 만큼 길고 난해한 서사극이다. 일상의 시름을 극장에서 잊으려는 관객의 뒤통수를 가차없이 후려친다. 위안이 아니라 지적인 고통과 해석의 산고를 안긴다. 그것도 4시간 30분 동안. 주최 측은 "이러다간 5시간 된다"고 걱정 중이다. 온 나라에 부는 힐링 열풍에 반(反)하는 안티 힐링극이라 할 만하다.
제목부터 까다롭다. 괄호는 왜 붙었을까? 아폴로니아는 여주인공의 이름. 영어 철자 A를 뺀 '폴로니아'는 폴란드를 가리키는 언어유희다. 배경은 나치 대학살. 유대인 20명을 살리려다 죽임을 당하는 아폴로니아, 아이스킬로스가 쓴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이피게니아, 에우리피데스의 알세스티스가 나온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존 쿳시의 소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속 주인공 엘리자베스도 등장한다.
'이걸 다 알아야 하나?' 싶다. 그렇다. '힐링' 관객을 위해 감성으로 해독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 아니다. 기승전결 이야기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신화와 문학의 수수께끼 상자에 연극 10편 분량의 상징과 은유를 응축해 보여준다. 작품을 둘러싼 지적인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다.
1막 후 중간 휴식 시간에 가버리면 후회한다. 아폴로니아가 왜 죽는지가 2막에서야 제대로 설명된다. 최근 공연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인 강연 연기(lecture performance)도 나온다. 한 여배우가 울며불며 물 마셔가며 절규하는 독백이 25분간 계속된다.
그렇다고 고통만 주는 것은 아니다. 해답을 푼 후에 맛보는 지적인 극치감에 중독돼 또 보고 싶어질 수 있다. 긴 시간을 관통하는 주제는 죄책감과 희생. 폴란드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끼여 주권을 뺏기고 나치 독일에 짓밟혀 홀로코스트의 학살장이 된 폴란드에서는 대놓고 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낸 연극 무대가 삶의 탈출구였다. 그래서 발달한 상징과 은유의 기법이 탁월하다.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은 아가멤논의 대사를 놓치지 말자. "나는 살인자가 되려고 한 적이 없다. 살인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망설이는 관객이시여, 도전도 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제12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
1막 후 중간 휴식 시간에 가버리면 후회한다. 아폴로니아가 왜 죽는지가 2막에서야 제대로 설명된다. 최근 공연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인 강연 연기(lecture performance)도 나온다. 한 여배우가 울며불며 물 마셔가며 절규하는 독백이 25분간 계속된다.
그렇다고 고통만 주는 것은 아니다. 해답을 푼 후에 맛보는 지적인 극치감에 중독돼 또 보고 싶어질 수 있다. 긴 시간을 관통하는 주제는 죄책감과 희생. 폴란드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끼여 주권을 뺏기고 나치 독일에 짓밟혀 홀로코스트의 학살장이 된 폴란드에서는 대놓고 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낸 연극 무대가 삶의 탈출구였다. 그래서 발달한 상징과 은유의 기법이 탁월하다.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은 아가멤논의 대사를 놓치지 말자. "나는 살인자가 되려고 한 적이 없다. 살인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망설이는 관객이시여, 도전도 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제12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
◇뮤지컬 '원스' 연출가 존 티파니의 에너지극
제6회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폐막작인 '블랙워치'는 올 들어 소개된 해외 작품 중 단연 최고로 꼽을 만한 수작이다. 뮤지컬 '원스'로 토니상 연출상을 받은 존 티파니(41)가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을 지휘해 만들었다.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특공 부대 '블랙워치'의 이라크 파병 실화와 퇴역 군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다.
2006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연 때부터 돌풍이 불기 시작해, 영국의 토니상인 올리비에상 작품상·연출상 등 4개 상을 받고, 이듬해 미국에 상륙, 뉴욕타임스·뉴스위크·LA타임스 등이 앞다퉈 그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아예 리뷰에서 "보다 울었다"고 고백했다. 이번이 아시아 초연.
군인 10여명이 나와 2시간 동안 끌고 간다. 원초적, 마초적 에너지가 터질 듯 공간을 채운다. 배우의 동선이 성글게 짜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게 계산된 안무다. 때때로 발레를 보는 듯, 정교한 움직임이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한다.
현 시점에서 가장 뜨겁고 무거운 주제에 깊숙이 칼을 꽂은 고발극이자, 시적인 힘이 넘치는 비가(悲歌)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군인들은 떨리는 손으로 고향에서 온 편지를 뜯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지는 사나이들의 전진이 말 없이도 쩌렁쩌렁 울린다.
▷(아)폴로니아, 5~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3668-0106
▷블랙워치, 26~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5~6
제6회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폐막작인 '블랙워치'는 올 들어 소개된 해외 작품 중 단연 최고로 꼽을 만한 수작이다. 뮤지컬 '원스'로 토니상 연출상을 받은 존 티파니(41)가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을 지휘해 만들었다.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특공 부대 '블랙워치'의 이라크 파병 실화와 퇴역 군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다.
2006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연 때부터 돌풍이 불기 시작해, 영국의 토니상인 올리비에상 작품상·연출상 등 4개 상을 받고, 이듬해 미국에 상륙, 뉴욕타임스·뉴스위크·LA타임스 등이 앞다퉈 그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아예 리뷰에서 "보다 울었다"고 고백했다. 이번이 아시아 초연.
군인 10여명이 나와 2시간 동안 끌고 간다. 원초적, 마초적 에너지가 터질 듯 공간을 채운다. 배우의 동선이 성글게 짜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게 계산된 안무다. 때때로 발레를 보는 듯, 정교한 움직임이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한다.
현 시점에서 가장 뜨겁고 무거운 주제에 깊숙이 칼을 꽂은 고발극이자, 시적인 힘이 넘치는 비가(悲歌)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군인들은 떨리는 손으로 고향에서 온 편지를 뜯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지는 사나이들의 전진이 말 없이도 쩌렁쩌렁 울린다.
▷(아)폴로니아, 5~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3668-0106
▷블랙워치, 26~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