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열린 소박한 공연 다시 한 번 마음을 울리다

  • 정지섭 기자

입력 : 2012.09.03 00:03

친지 만나러 갔던 미국에서 유학생 요청으로 열린 소공연
공테이프에 녹음했던 학생이 "함께 나누고파" 소장품 건네

음반 재킷 등에 널리 쓰여 대중에게도 친숙한 김광석의 캐리커처.
"재밌게 노시다 가시면 되죠. 뭐."

기타 음을 잡던 김광석이 다소 썰렁한 오프닝 멘트(?)를 날리더니 통기타를 치며 '친구'를 부른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노래 속으로 빠져든 듯 객석이 조용해지자 김광석은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떠들고 싶으면 떠들어도 괜찮아요"라며 웃음을 이끌어낸다. 이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기다려줘' '거리에서' '사랑했지만'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등 대표곡 열 곡이 이어지고 중간중간 "한국에서도 TV에 출연하지 않다 보니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다" 같은 소소한 농담이 곁들여진다.

고(故) 김광석의 1992년 10월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공연 실황이 앨범 '언포게터블 김광석'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김광석이 친지를 만나러 세인트루이스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워싱턴대 한인 학생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대학 소강당에서 관객 3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소박한 콘서트였다.

이 음반의 출발은 당시 관객 중 한 명이 개인적으로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였다. 워싱턴대 유학생 A씨가 김광석에게 "테이프에 담아서 추억으로 소장하고 싶다"며 미리 허락을 받은 뒤 공연 마이크 옆에 녹음용 마이크를 달았고, 한 시간 남짓 이어진 공연은 당시 일반 가정에서 흔히 쓰이던 공카세트테이프에 그대로 담겼다.

테이프를 '소장품 1호'로 간직하고 있던 A씨는 2003년 12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음반레이블 '아름다운 동행' 최성철 대표에게 "더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게 해달라"며 아무 대가 없이 선뜻 테이프를 건넸다고 한다. 1일 기자와 만난 최 대표는 "그날 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김광석의 목소리와 노래를 듣는 순간 전율했고, 원본이 훼손될까 걱정돼 바로 CD 음원으로 옮겨 담았다"고 했다. 그는 "당초 김광석의 8주기 기일이던 2004년 1월에 앨범을 내놓으려 했지만 다른 작업들이 예정돼 있던 데다 김광석 노래의 저작권·실연권을 위탁 관리하는 음악단체들과 협의해 법적 걸림돌을 없애고 '음반을 내도 좋다'는 최종 동의를 얻느라 8년이나 미뤄지게 됐다"고 했다.

공연실황을 녹음했던 카세트테이프를 본떠 만든 앨범 재킷. /아름다운 동행 제공
본격적인 음반 제작은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카세트테이프 음원에 섞인 잡음을 제거하면서도 현장의 생생함은 최대한 살리기 위해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두 차례 거쳐 CD 음반으로 만들었다. 최선의 사운드 보정 작업을 했다고 해도 원음의 한계 때문에 음질이 최상이라고는 보긴 어려운 게 사실. 그러나 김광석의 조곤조곤한 목소리, 기타 튜닝 소리, 관객들의 손뼉과 웃음 등이 전해주는 현장감은 최신 디지털 라이브 앨범들과는 또 다른 아날로그적 매력을 안겨준다.

종이로 된 재킷에 검은색 디스크까지 LP를 그대로 빼닮은 이번 앨범은 이달 중 진짜 LP(한정판 300장)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는 LP만을 위한 보너스 트랙도 실린다. 김광석이 관객들에게 당시 유행하던 '최불암 시리즈' 중 제법 수위가 높은 한 편을 소개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실황이다. 앨범 수익금 일부는 김광석의 노모에게 전달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