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객석에서] 눈물도 고통도 살아있으니 겪는다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9.02 23:37

[국립극단 '꿈']
삼국유사 프로젝트 첫 작품… 시공 넘나드는 유려한 수작

"욕망을 선택한 것이 그렇게 큰 범죄였을까?"

국립극단의 야심작 '삼국유사 프로젝트' 중 첫 작품인 '꿈'(작 김명화·연출 최용훈)은 삶을 삶이게 하는 욕망의 근원을 들여다본다. 삼국유사 속 원효와 의상, 소설 '꿈'을 쓰는 춘원, 춘원이 쓰는 '꿈' 안의 인물인 조신이라는 3가지 시공간과 인물이 한 무대에서 펼쳐진다. 자칫 산만하기 쉬운 장치는 유려하고 세련된 연출의 결을 따라 매끄럽게 연결된다. 중첩되는 상징과 이미지는 절묘하게 의미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꿈'은 파도 소리로 시작해서 파도 소리로 닫힌다. 욕망의 소리, 욕망을 들썩이게 하는 소리, 욕망이 충족되지 못해 웅성거리는 소리다. 원효는 욕망에 따라 요석공주와 함께 '선(線)'을 넘었다. 양심의 선을 넘어 친일(親日)을 택한 춘원은 돌팔매를 피할 수 없고, 애욕의 선을 넘어 월례를 택한 조신은 모든 것을 잃는다.

태수의 딸을 애모하던 조신(오른쪽)은 그녀가 간절히 원하던 진달래를 꺾어 바친다. /국립극단 제공

조신은 월례에게, 춘원은 아내에게 꽃을 바친다. 두 공간을 연결하는 분홍 진달래는 욕망의 상징이자 공포와 불안의 씨앗이 되어 현실을 옥죈다. 욕망에 순응한 춘원과 조신의 마음은 이미 지옥이다. 작품은 순결한 청년 춘원이 노년의 춘원에게 칼을 겨누게 함으로써 논쟁적 인물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뒀다.

인생은 꿈이거나 꿈 같다고 하는 춘원에게 아내 허영숙은 "인생은 악몽이고 싸움"이라고 말한다. 꿈을 꿔서 세상을 벗어나거나, 욕망을 탈색해 성불(成佛)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감옥이고 지옥이라는 것을 긍정할 때 삶은 살아진다.

작품의 끝 부분, 자신을 향한 선묘 낭자의 사랑을 천년간 외면하던 의상은 그 사랑이 곧 고통임을 깨닫고 천길 백발을 늘어뜨린 선묘를 품에 안는다. 흐르는 선묘의 눈물은 속세의 간난신고를 들여다본 관음(觀音)의 눈물이다.

삶의 절정을 만개한 정념(情念)의 성취로만 보면 허망하다. 그러나 악몽이고 싸움이라고 보면 도리어 아름답다. 발길에 차이는 고통 사이로 꽃이 피지 않는가. '꿈'은 말한다. 눈물도 고통도 살아있으니 닥친다고. 인간이기에 꿈도 꾸고, 꽃도 보는 것이다. 그러니 꿈꾸러 가자, 싸우러 가자. 욕망의 파도에 뺨을 맞더라도, 삶을 향해 돌진하자.

▲16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계동 백성희장민호 극장, 1688-5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