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22 23:46
[피아니스트 안젤라 휴잇 내달 내한… 4년 만에 독주회]
피아노 독주곡 전집 완성 11년… 6개 대륙서 110여 차례 연주회
3년 만의 휴가도 바흐와 함께 "바흐는 평생을 같이할 음악"
이때 횡단보도 앞을 지나는 승용차에서 바흐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차창을 열어놓고 최대한으로 볼륨을 높인 그 바흐 음악의 연주자는 휴잇 자신이었다. 휴잇은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고국에서도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관객의 80%가 20~30대의 젊은 층이었던 걸 보면 한국에서 바흐가 무척 '쿨(cool)'한 것 같다"며 웃었다.
◇14개월간 '바흐 마라톤' 완주
2006년과 2008년에 이어 4년 만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푸가의 기법'으로 다음 달 내한하는 휴잇의 별명은 '바흐 음악의 여(女)사제'. 그는 성당 오르가니스트인 아버지와 피아노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세 살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아버지의 성당에서 바흐를 처음 들었다. 그는 "바흐는 처음 들었던 음악이자 평생 따라다니는 음악"이라고 했다. 그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1년에 걸쳐 바흐가 남긴 건반악기 독주곡 전곡을 음반 15장 분량의 전집으로 완성했다. 당시 1053분짜리 이 음반 전집에 휴잇은 3500단어에 이르는 해설을 직접 썼고, 2006년 영국 음반 전문지 '그라모폰'의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됐다.

2007년부터 14개월간은 세계 6개 대륙 25개국에서 110여 차례에 걸쳐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전곡을 연주하는 '바흐 마라톤'을 완주했다. 마라톤의 결승점이었던 중국 상하이 연주회를 마치고, 무대 뒤에서 휴잇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프로젝트를 마쳤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했다.
한 번하기도 힘들다는 '바흐 마라톤'을 마치고도, 휴잇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27곡)으로 쉼 없이 녹음 일정을 잡아나가는 '일벌레'이기도 하다. 전화 인터뷰 직전까지 9시간 동안 연습했다는 그는 "2010년 열흘간 피아노를 치지 않았던 것이 가장 오래 쉰 것"이라며 "그때도 바흐의 인벤션(Invention) 연습과 리스트의 악보 읽기는 거르지 않았다"고 했다. 빡빡한 연주와 녹음 일정 때문에 2015년은 되어야 쉴 틈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인생은 선택, 난 바흐"
바흐와 같은 바로크 작품은 작곡 당대의 건반 악기인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는 '시대 연주' 열풍이 거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대 피아노를 고집한다. 휴잇은 "중요한 건 악기가 아니라 '어떻게 연주하느냐'일 것"이라며 "바흐의 복잡다단한 구조를 훨씬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피아노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것만을 좇는 이 시대에도 왜 바흐 같은 고전이 여전히 필요한지 그에게 물었다. "흥미롭거나 가치 있는 걸 모두 하기에 삶은 턱없이 짧아요. 매일 매 순간,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죠. 그때는 가장 소중한 것을 택할 수밖에 없어요." 바흐는 여전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말이었다.
▲안젤라 휴잇 피아노 독주회, 9월 12일(골드베르크 변주곡), 13일(푸가의 기법 등)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