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바닷가, 그는 왜 그녀의 목을 졸랐을까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8.15 23:44

연극 '뜨거운 바다'
재일교포 출신 작가 쓰카 작품… 순수를 좇는 한 남자의 서정시
온몸으로 웃기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눈물을 터뜨린다

대낮에 바닷가에서 별 볼일 없는 공돌이가 못생긴 공순이를 목 졸라 살해했다. 사건을 맡은 형사반장은 멋들어진 턱시도를 입고 나타나 수사는 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만 던진다. 10년간 사귄 동료 여형사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위기'. 반장은 "네 신혼여행에 따라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다른 서에서 차출된 형사도 산만하기는 마찬가지. 용의자는 "왜 나를 취조하지 않느냐"며 대들고, 취조실은 중구난방 좌충우돌 슬랩스틱의 장(場)이 된다. 그러나 코미디의 엔진으로 돌아가는가 싶던 이야기는 절정에서 밀려오는 진정성의 파도를 타고 폭발한다. 남자가 목 조르고 싶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라 잃어버린 순수(純粹)였다.

연극 '뜨거운 바다'(원제 熱海殺人事件)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기어이 가보려 했던 한 남자의 서정시다. 작품을 쓴 쓰카 고헤이(한국명 김봉웅, 1948~2010)는 재일교포 출신의 극작가이자 연출가. '일본 현대 연극의 아버지'가 한국의 피를 이어받은 바로 그, 김봉웅이었다. 쓰카는 '뜨거운 바다'로 25세 최연소에 저명한 키시다 희곡상을 받았다. 1982년 재일교포 작가로는 최초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7년 일본 정부가 학문·예술 분야에서 공적이 큰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인 자수포장도 외국인 최초로 받았다. 그는 1985년 조국을 찾아 전무송 강태기 최주봉 김지숙 주연으로 '뜨거운 바다'를 올려 연극계를 흔들었다.

연극 ‘뜨거운 바다’에 출연하는 배우 이경미, 이명행, 김동원, 마광현(왼쪽부터 시계 방향). 지난 9일 공연장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이덕훈 기자 dhlee@chosun.com
그 후 27년, '뜨거운 바다'는 아무 데도 없으나 모두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순수의 섬으로 다시 관객을 데려간다. 뛰어난 원작이, 웃기면서 울리는 데에 도가 튼 연출가 고선웅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난파선을 탄 듯 어지럽던 관객은 연극이 끝날 무렵, 꿈꾸던 그 섬, 슬프고 아름다운 고향에 도착해 있다. 공돌이(용의자 오야마)는 어린 시절 학교 친구였던 공순이(피해자 아이코)를 위해 천하장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힘내라'던 아이코의 목소리, 하얗게 불던 바람, 파랗게 높던 하늘이 삶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한시도 잊지 못했던 아이코는 도쿄의 매춘부가 돼 있었다. 다시는 3학년 2반 아이코 야마구치를 만날 수 없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오야마에게 선택은 하나였다.

500명 오디션을 통과한 이명행(36) 마광현(29) 김동원(28) 이경미(22)는 에너지가 넘친다. 쓰카식 무대 화법에 따라 내내 고함친다. 쩌렁쩌렁 소리도 큰 데다, 엎어지고 쓰러져 보는 눈과 귀가 정신없다. 그 혼란 사이로 격렬한 서정이 스며들면서 관객을 포박하는 데 성공한다.

'뜨거운 바다'는 부른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트위터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이리로 와서 잃어버린 그 시절을 만나보라고 한다.

▲19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3668-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