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궤도(ArcelorMittal Orbit)'가 흉물스럽다고? 런던이 다르게 보일텐데

  • 곽아람 기자

입력 : 2012.07.30 23:34

[런던올림픽 기념탑 만든 英 미술가 아니시 카푸어]
탑의 형태는… 바벨탑·에펠탑 등 기념비적 구조물 참조해 21세기적 시각 반영한 것
관객에게 궤도란… 전망대는 런던을 보여주고 비추기 위한 곳, 일종의 여행과 같은거죠

아니시 카푸어 제공

높이 115m의 새빨간 철골탑이 런던의 하늘을 점령했다. 회색 튜브로 감긴 기둥을 소용돌이치듯 휘감은 빨간색 격자 구조물은 롤러코스터 선로처럼 최정점까지 부상했다가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뚝 떨어진다. 2012 런던올림픽을 기념해 만들어진 이 철골탑은 올림픽 개막과 함께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올림픽이 끝나면 잠시 문을 닫았다가 재정비를 거쳐 향후 용도를 결정, 2013년 재개장한다. 제작비 2270만파운드(약 405억원)로 비용을 부담한 철강업체의 이름을 따 '아르셀로미탈 궤도(ArcelorMittal Orbit)'라고 불린다.

아름다운 올림픽 주경기장 바로 옆자리에 세워진 철골탑은 얼핏 보기엔 SF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처럼 보인다. 시민들에겐 충격이었다. '흉물'이란 논란도 그래서 생겼다. 이 탑을 디자인한 '건축과 조각의 경계를 허문 작가' 아니시 카푸어(Kapoor·58·사진)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번잡한 런던을 벗어나 '어딘가'에서 휴식 중이라고 한다.

―당신의 '궤도'는 런던에 어울리는 작품인가

"올림픽을 위해 런던의 '현대성(modernity)'을 부각시킬 수 있는 작품을 의뢰받았다. 나는 런던의 현대성에 대한 증거이자, 런던의 스카이라인에 '새로움'을 추가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이 '궤도'는 현재 영국 공공미술 작품 중 최고 높이다. 굳이 '탑(tower)' 일 이유가 있나.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市長)이 높은 구조물을 의뢰했다. 나는 21세기적인 시각으로 전통적인 탑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체된 탑'을 만들었다. '궤도'는 비밀스러운 순간, 혹은 경험으로 구축된 비대칭의 오브제다. '궤도'를 탐험하는 것은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여정과 같다. 이는 궁극적으로 '하늘에 닿고자 하는 형태'라는 탑의 기원과 맞닿아 있다."

―파리의 에펠탑과 대적하려고 '궤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화(神話) 속 바벨탑을 비롯해 에펠탑, 러시아 작가 타틀린이 만들려고 했던 사회주의 기념물인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 등 고층 구조물의 역사에는 몇몇 중요한 의미와 순간들이 있다. '궤도'는 이 모든 것을 참조한 21세기적 오브제다."


 

런던 올림픽공원에 설치된 아니시 카푸어의 올림픽 기념탑 ‘아르셀로미탈 궤도’(높이 115m) 앞을 지난 24일 한 남자가 지나고 있다. /AP뉴시스

―'궤도'의 형태에 대해 '공공미술의 고질라다'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망가뜨렸다'며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궤도의 비선형(非線形) 구조는 고리 모양 형태의 연결이 다양한 지점에서 하나로 융합돼 안정성을 안겨다 주도록 설계됐다. 관객에게 '궤도'는 일종의'여행'이다. 관객이 '궤도'로 진입하면, 위에서 시커먼 덮개(canopy)가 위협적으로 맴돌 것이고,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그를 전망대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관객은 런던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자 비추기 위한 공간인 그곳에서 이전과는 다른 런던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궤도' 입장료(15파운드·약 2만7000원)가 너무 비싸다고 지적했다.

"나는 '궤도'가 민주적 이상(理想)을 포함한 민주적 오브제라는 사실을 명확히 표명했다. '궤도'는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되어야 한다. 실험적인 작품이라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게 필요하다."

―올가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개인전이 있다. 어떤 작품을 선보일 계획인가.

"30여년간의 내 작업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작품들은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오브제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내 작업의 중심 주제를 탐구할 것이다."

―만일 서울을 위한 공공조각을 한다면, 어떤 걸 하고 싶은가.

"그런 의뢰(commission)가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