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7.27 15:14
<까멜리아 레이디>로 3년 만에 방한 프리마돈나 강수진
검다 못해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녀가 들어온다. 긴 목은 가녀리지만 곧다. 그녀의 몸도 그렇다. 세포 하나, 관절 하나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다. <까멜리아 레이디> 공연을 위해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만났다. 리드 앤더슨 감독은 “세계 최고의 무용수가 슈투트에 있다”고 했다.
프리마돈나 강수진이다.

그 발은 1981년 열네 살이던 그가 홀로 모나코로 떠날 때도, 열아홉에 동양인 최초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을 때도, 슈투트가르트 최초로 발레의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때도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세계 최고령 발레리나가 된 지금까지도 그녀와 함께했다.
무엇보다 그가 무대 위에서 찬란한 조명을 받을 때보다 어두컴컴한 연습실에서 홀로 눈물을 쏟으며 연습할 때 진가를 발휘했다. 토슈즈 안의 발은 매일 더 단단해졌다. 프로 발레리나들이 2주에 한 번씩 갈아 신는 토슈즈를 하루에 서너 켤레씩 바꿔 신었다. 그의 다섯 발가락은 발레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와 함께해준 유일한 벗이다.
“저는 친구가 없었어요. 주변에 사람들은 늘 많았지만 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 처음이었어요. 실력이 늘수록 친구는 사라졌죠.”
남편이 “이건 피카소의 작품이야.” 하며 사진을 찍고 액자로 만들었다는 강수진의 발은, 국내에서 더 유명해졌다.
고은 시인은 어느 글에서 ‘처음 이 사진을 보았을 때 심장이 어찌나 격렬히 뛰는지 한동안 두 손으로 심장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답니다. 그녀의 발은, 그녀의 성공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나는 무엇에 이렇게 간절해본 적이 있었는가 돌아보게 될 만큼.’이라고 썼다.
She is only One
“재능이란 가졌거나 가지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건 어디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현대 드라마 발레의 거장 존 그랑코
강수진과 함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한국 공연을 위해 방한한 발레단의 감독 리드 앤더슨은 ‘강수진’을 설명하면서 존 그랑코의 말을 언급했다.
“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한 번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진의 무대를 보면 누구든 느낄 수 있지요. 그녀는 ‘진짜 춤’을 추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다. 열일곱이던 1985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 세계의 명망 높은 발레단에 입단할 수 있다. 강수진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군무의 맨 뒷줄에도 서지 못했다. 한 줄씩 앞으로 와서 1989년에 <잠자는 공주>의 1막 요정 역을 맡았고, 1993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을 맡았다. 첫 주연, 입단한 지 8년 만이었다.
“발레단에 들어가서 우울증과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컴컴한 방에서 한국 책을 보며 피자를 먹는 제 모습이 떠올라요. 몸무게가 10㎏ 늘었고, 매일 울면서 잠들었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 돌아가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모나코 왕립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가 떠올랐다. 모두 잠이 들면 몰래 스튜디오로 올라가 밤새 연습을 했었다. 밥도 못 먹고, 말도 못했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고, 말은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춤은 출 수 있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강수진을 일으킨 것도 역시 춤이었다. 모두 잠든 밤, 토슈즈를 신고 바를 잡았다.
“‘주인공을 해야겠다’, ‘유명해져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정말로요. 다만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고, 발전하는 나를 보는 게 행복했어요. 연습이 고통이었던 적은 없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에 아픈 곳이 없으면, ‘어? 이상하다. 연습이 부족했나?’ 했을 정도였죠.”
8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았다. 다리에 통증이 왔다. 익숙한 일이기에 그러려니 했다. 나중엔 걷기도 힘들어 병원에 갔다. 정강이 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6주만 쉬라고 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 후 5년을 금이 간 뼈로, 날아올랐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 할 거예요. 후회는 없어요. 그 후 5년간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후로 이 뼈는 제 몸에서 가장 강한 뼈가 됐어요.(웃음)”

영화에 칸 영화제가 있다면, 발레에는 ‘브루아 드 라당스’ 상이 있다. 볼쇼이, 마린스키, 로열 등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 참가한다. 1999년, 강수진이 이 상을 받았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최초였다. 그에게 이 상을 안겨준 작품은 바로 <까멜리아 레이디>다. 일류 발레리나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그에게 대표작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강수진에게는 이 작품이 그렇다. 10년이나 넘게 춤을 췄지만 출 때마다 설렌다는 작품, 마흔여섯인 지금 전보다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마르그리트(<까멜리아 레이디>의 여주인공)를 표현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작품, 강수진을 일류 발레리나로 인증해주는 작품이다.
“<춘희(까멜리아 레이디의 한국 이름)>의 막 전체를 한국에서 공연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찌리릿~ 하는 느낌이 와요. 발레가 좋은 점은 파트너가 바뀌면 같은 작품인데도 새로운 감정이 생긴다는 건데, 98년에 이 작품을 처음 공연한 후로 굉장히 많은 파트너를 만났어요.
그중에는 지금 무용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요. 예술은 굉장해요. 계속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요. 저는 지금도 이 작품에서 정말이지 많은 감동을 받아요.”
이번 공연에서 그의 상대역인 아르망 역을 맡은 마레인 라데마케르는 강수진과의 듀엣을 통해 주역으로 데뷔했다. 그에게도 이 작품 그리고 파트너 강수진은 특별하다.
“지금껏 제 경력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자 두려웠던 순간은 강수진과 함께 <까멜리아 레이디>의 프리미어 공연을 마친 후, 리드 앤더슨 감독이 수많은 관객 앞에서 저를 주역 무용수로 데뷔시킨 일입니다. 그때 파트너 강수진의 눈가가 젖어 있는 걸 봤어요. 힘겨운 리허설과 공연 끝에 놀라운 선물이 제게 주어진 거죠.”
마레인은 강수진과의 공연을 ‘굉장한 경험(great experience)’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강수진은 작품을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직관이 대단한데, 그녀의 춤은 음악의 박자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음악을 번역(translate)하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 나이 마흔여섯. 현존하는 최고령 발레리나 강수진. 서른에는 마흔이 되면 당연히 은퇴할 줄 알았다. 마흔에 슈투트가르트에서 20주년 헌정 공연을 했다. 공연을 마치고 나니 발레가 훨씬 더 재밌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았던 개인 운동이 지금까지 저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아파서 토슈즈를 못 신는 날도 많았어요. 하지만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신듯 저는 토슈즈를 신었죠.”
유리구두 속 강수진의 발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남자, 남편 툰치 소크만이다. 터키인인 남편을 만난 건 20년 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였다. 당시 남편은 발레리노였고, 지금은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발레 마스터다. 강수진의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7년을 기다렸고, 2002년 1월 드디어 치른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곧장 연습을 하러 스튜디오로 돌아간 아내를 이해해준 사람. 이 남자는 강수진과의 인터뷰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저는 지금 제 몸과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건강하다고 느껴요. 따로 컨디션 조절이 필요 없을 정도로요. 그 이유는 남편이 곁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의 아낌없는 사랑이 저를 지탱해주고 있어요. 때로는 스무 살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강수진은 발레단의 연습실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계단을 오르던 툰치는 흑단같이 검은 머리를 지닌 동양 여자가 한 계단씩 자신과 가까워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후 그녀에게만 냉정하게 대했던 건 그 마음이 들켜 발레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였다.
무용을 그만둔 지금은 강수진의 유일한 그리고 최고의 지원군이다. 툰치의 왼쪽 어깨에는 수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는 매일 아침 그녀를 위해 요리한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프리마돈나가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은 그에게 행복이다.
“동료들 중 가장 나중에 ‘Hello(인사)’ 했던 사람이 제 남편이 됐어요.” (강수진)
“수진은 제가 만난 무용수들 중 가장 clean(순수)한 사람이에요. 저는 어디서도 이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어요.” (툰치)
순수하다는 건 한 점의 불순물도 섞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강수진의 공연에는 그를 닮은 이 순수함이 있다. 그가 무대에 오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100% 몰입’하는 것, 한 점의 상념도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완전히 몰입해야 해요. 그래야 저도, 관객도 모두 작품을 느낄 수 있어요. 발레를 모르는 사람도 분명히 느껴요. 그건 누군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수도 있어요. 그 후에는 변화가 일어나거든요. 그 춤을 춘 사람에게도, 그 춤을 본 사람에게도요.”
<까멜리아 레이디>로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강수진이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언제 은퇴할 것인가’였다. 스스로도 ‘현존하는 최고령 발레리나’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이 질문에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다. 그는 나이를 ‘넘버(숫자)’라고 표현했는데, 상투적인 이 말이 그에게는 곧 삶이다.
“발레를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저에게는 ‘오늘’이 중요해요. 제가 열심히 공연하는 하루가 중요하고요. 그렇게 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니까 오늘이 됐어요. 언제 은퇴할거냐고 물으시면 저도 몰라요.(웃음) 다만 스스로 최고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누가 이야기하기 전에 물러날거에요.”
강수진의 대표작 <까멜리아 레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가 원작이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기 있는 여인 마르그리트 코티에는 많은 숭배자로부터 까멜리아(동백꽃)를 선물로 받는다. 그녀는 귀족의 공개 애인이다. 명문가의 순수한 청년 아르망은 한 공연장에서 마르그리트를 만나고, 두 사람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둘의 만남을 알게 된 아르망의 아버지는 마르그리트에게 아르망을 떠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르망은 마르그리트가 과거의 화려한 삶이 그리워 자신을 떠났다고 오해한다. 마르그리트는 진실을 숨긴 채 아르망을 그리워하다 폐병에 걸린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일기장을 친구에게 맡기며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아르망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녀는 동백꽃이 송이째 떨어지듯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유슬기 기자 | 사진 유진행, 크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