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의 '라 보엠', 2000살 야외극장을 깨우다

  • 오랑주(프랑스)=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7.12 03:09 | 수정 : 2012.07.12 10:42

[오페라라 보엠]
프랑스 오랑주 페스티벌 개막작 , 고대 로마 극장 객석에 앉다
밤하늘·매미소리 정겨워 - 극장 뒤 방벽은 천연음향판… 세종문화회관보다 낫네
TV생중계 250만명 시청 - 눈높이 맞춘 작품골라 성공… 내달 연세대 노천극장 공연

온종일 작열하던 남불(南佛)의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한 10일(현지 시각) 오후 9시 45분. 프랑스 남부 오랑주, 고대 로마제국이 2000년 전 건설한 야외극장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지난 1869년 창설되어 143년의 역사를 지닌 프랑스 최고(最古) 축제인 오랑주 페스티벌이 올해 시즌 개막작으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공연한 것이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 감독인 정명훈은 객석을 가득 메운 8600여명의 박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박력 있게 지휘봉을 휘두르며 개막을 알렸다.

쏟아지는 별·매미 소리…야외공연의 맛

103m 길이와 37m의 높이, 1.8m의 두께를 자랑하는 반원형 극장 무대 뒤편의 거대한 방벽은 그대로 천연 음향판이 됐다. 3막에서 하프의 낭랑한 울림까지 객석에 전해지자, 지휘를 맡은 정명훈도 "야외 공연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이 야외극장의 음향은 세종문화회관보다도 낫다"고 격찬했다. 별이 총총 반짝이는 밤하늘은 '지붕'이었고, 간간이 울리는 매미 소리는 오페라에 곁들인 '배경 음악'이 됐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을 그렸던 오페라 '라 보엠'을 한여름 남프랑스의 대형 야외극장에서 펼쳐낸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역발상이었다. 연출가 나딘 뒤포는 주인공 로돌포 역을 맡은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에게 탁상 위로 올라가 노래하라고 지시할 만큼 시종 역동적인 동선(動線)을 강조했다. 성인과 어린이 합창단을 포함해 150여명을 무대 위에 포진시킨 2막의 카페 장면은 파리 시내 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장관이었다. 30분의 휴식을 포함해 오페라는 자정을 훌쩍 넘어서야 끝났지만, 관객들은 못내 아쉬운 듯 박수를 치며 흥을 이어갔다.

10일 밤(현지 시각), 프랑스 오랑주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푸치니의 오페라‘라보엠’2막 장면. 성인과 어린이 합창단을 포함, 150여명을 무대에 투입해서 장관을 연출했다. /ADL 제공
장수 비결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야외극장을 문화 잔치판으로 활용한 페스티벌의 장수(長壽)에는 몇 가지 성공 비결이 있다.

우선 철저한 '자급자족'. 인근 아비뇽 축제와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이 40~50%의 공공 지원을 받고 있는 데 비해, 이 페스티벌은 티켓 수입과 프로그램 판매 등 자체 수입이 80%에 이른다.〈그래픽〉 레몽 뒤포 축제 총감독은 "8600석이 매진되면 회당 100만유로(약 14억원)의 티켓 수입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대중 눈높이에 맞춘 작품 선정과 엄격한 공연 횟수 조절도 장수의 비결. 이 축제는 매년 2편의 오페라를 2차례씩 공연하고, 여기에 2~3차례의 음악회를 곁들인다. 뒤포 총감독은 "지난 2000년 공연했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5년 뒤에 다시 무대에 올려보았지만, 객석 반응이 좋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연출을 선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티에 리 마리아니 축제 회장은 "우천시를 대비해서 공연 당일 전후로 사흘을 항상 잡아놓고, 연습과 준비에 8일씩 걸리기 때문에 두 작품 이상 무대에 올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프랑스 최고(最古) 음악제인 오랑주 페스티벌이 열리는 야외 공연장.
텔레비전 생중계와 오페라 프로덕션 수출도 이 축제만의 '비교 우위'로 꼽힌다. 10일 공연된 '라 보엠' 역시 공영 방송인 프랑스 2채널을 통해서 생중계되면서 250만명의 시청자가 지켜보았다.

오랑주 페스티벌은 지난 2004년 오페라 '카르멘'을 한국·일본과 공동 제작했고, 중국 상하이(2008년)와 이스라엘(2011년)에도 진출했다. 최근에는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에도 오페라 프로덕션을 수출하면서 중동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다음 달에는 '라 보엠'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공연한다. 뒤포 총감독은 "2015년에는 핀란드의 사본린나 페스티벌과도 공동 제작해서 오페라의 '국제 네트워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오페라 '라 보엠', 8월 28·30일, 9월 1·2일(우천 시 하루씩 연기) 연세대 노천극장, (02)548-3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