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개방·진취적 연주자 힐러리 한… 앙코르 곡 직접 뽑고, 유튜브에 알리고…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7.05 23:26

스타이면서 비주류도 껴안고 홈피·SNS 홍보에 적극 활용

콩쿠르나 신작(新作) 공모는 으레 정부나 재단에서 주관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31)이 이런 선입견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독주회에서 앙코르로 연주할 만한 5분 이내의 이중주를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직접 공모한 것이지요.

이 공모전에 참가한 작곡가 400여명의 작품 가운데, 지난달 힐러리 한은 하와이에서 활동하는 제프 마이어스의 작품인 '카와이의 앵그리 버즈(Angry Birds in Kauai)'를 당선작으로 발표했습니다. 발표 직후 힐러리 한은 작곡가와 인터뷰를 직접 진행했고, "아침 일찍 하와이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에서 착안했다"는 작곡 동기까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공개했습니다.

최근 자신의 독주회에서 연주할 앙코르곡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모한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힐러리 한은 이전에도 폴란드의 작곡가 펜데레츠키 등에게 앙코르로 연주할 신작을 26편 위촉했습니다. 지금까지 절반인 13곡을 세계 초연했고, 나머지 작품도 내년까지 차례로 연주하고서 녹음에 나설 계획입니다. 마이어스의 당선작은 27번째 앙코르곡이 되지요.

힐러리 한은 네 번째 생일 직전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12세 때는 볼티모어 심포니와 협연했고 16세에는 음반사 소니뮤직과 전속 계약을 맺었던 영재입니다. 하지만 데뷔 음반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쉬운 화려한 낭만주의 작품 대신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무반주 곡들을 골랐을 만큼 조숙했던 연주자였지요. 그는 여덟 살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흐를 연주했다면서 "바흐는 내 연주가 정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반석"이라고 밝혀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힐러리 한은 현대음악에도 폭넓은 관심을 보여서 작곡가 제니퍼 히그던과 에드거 마이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했습니다. 히그던은 힐러리 한이 커티스 음대에 다닐 적에 현대음악을 강의했던 스승이었지요. 히그던은 제자를 위해 작곡한 이 협주곡으로 2010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힐러리 한은 '스승을 빛낸 제자'가 되었습니다. 힐러리 한은 최근 독일의 실험음악 피아니스트 하우슈카와 즉흥 연주를 바탕으로 이중주 음반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반경을 지속적으로 넓히고 있지요.

힐러리 한은 5개 대륙의 42개국 283개 도시에서 1300여회의 음악회를 열었던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입니다. 반면 비주류적이거나 실험적인 감수성도 적극적으로 껴안는 '속 깊은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자신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지난달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과 내한 당시에는 단원과의 동영상 인터뷰까지 직접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영민한 행보를 보고 있으면, 21세기 클래식 연주자에게 필요한 미덕은 개방성과 진취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