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6.24 23:22
'클래식 아이돌'의 현대음악, 난해·생경해도 관객은 환호
6년째의 그들, 괄목상대했다
오보에가 독주(獨奏)하면서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오자, 비올라도 현을 뜯어 장단을 맞추며 마치 거울처럼 다가왔다. 이윽고 무대 중앙에 도달한 이들은 같은 보면대(譜面臺)를 바라보며 호흡을 맞추다가, 사각(四角)으로 늘어선 악보들을 따라서 움직이며 연주했다. 실험적 행위예술과 전통적 이중주를 결합한 36세 중국 작곡가 후앙 루오의 '망각의 서(書)'에는 이렇듯 연주와 연기를 뭉뚱그린 듯한 극적 효과가 다분했다.

2007년 리처드 용재 오닐의 주도로 결성된 실내악 앙상블 '디토'는 젊고 준수한 남성 연주자 위주의 멤버 구성으로 '클래식계 아이돌 그룹'으로 불렸다. 하지만 결성 6년째를 맞아 올해 디토는 20~21세기 현대 음악을 전면에 내걸면서 한층 '괄목상대(刮目相對)'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음악회에서 디토는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의 '다른 기차들'과 2차 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초연됐던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전·후반의 주요 메뉴로 선보였다. 전쟁 와중에 태어난 메시앙의 곡과 기차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2차 세계 대전 전후(前後)의 세계를 묘사한 라이히의 곡을 편성한 사려 깊은 안배가 눈에 띄었다.
사전 녹음된 육성이나 음악에 현악 4중주의 실연(實演)을 덧입히는 콜라주(collage) 같은 라이히의 작품에서 이들은 규칙적 리듬의 반복을 통해 마치 기차에 탑승한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한없이 상승하는 진행으로 종교적 성스러움을 자아내는 메시앙의 4중주에서도 디토 멤버들은 한없이 진지하게 작품에 다가갔다. 루오의 작품에서는 탄탄하고 안정감 있는 호흡을 보여준 함경의 오보에, 메시앙의 4중주 3악장에서는 부드러움과 격함까지 풍부한 감정을 드러낸 김한(16)의 클라리넷 독주가 인상적이었다.
생경하고 난해할 법한 현대음악으로 연주회를 구성했는데도, 매진을 이룬 객석에서는 단원들의 입장과 동시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연주자들에 대한 든든한 팬덤(fandom)을 바탕으로 현대음악이라는 '쓴 약'에 아이돌이라는 '당의정(糖衣錠)'을 입힌 디토의 전략은 무척 영리해 보였다. 음악적으로든, 마케팅으로든 말이다.
▲앙상블 디토 페스티벌, 6월 30일과 7월 1일 세종문화회관, 7월 8일 예술의전당, 1577-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