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맞수 대결] 연극 '과부들' vs. '그을린 사랑'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6.06 23:36

★과부들 - 칠레 군정권에 남편 잃은 이들 삶의 희망·믿음… 3시간이 가볍다
☆그을린 사랑 - 배우 감정·독백관객에 못 미쳐… 장황한 전개… 3시간이 지겹다

3시간짜리 연극 2편이 잇따라 개막했다.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과부들'(연출 이성열)과 영화로 먼저 알려진 '그을린 사랑'(연출 김동현)이다. 모처럼 뿌듯한 관극 체험이 될지, 오도 가도 못하는 고통의 시간이 될지, 두 연극을 들여다봤다.

◇'좋아요!' '과부들', 연극의 뚝심이란 이런 것

한 구의 시체가 강을 따라 떠내려 온다. 화상, 타박상에 몽둥이찜질 흔적이 확연하다. 손가락은 마디마디 꺾였다. 처참한 고문을 당한 시신을 보고 한 여인이 외친다. "내 남편이야!" 뒤이어 다른 시체가 또 발견되고, 마을 여인들이 앞다퉈 나선다. 내 남편, 내 아들, 내 손자라고.

극단 백수광부 제공
국내 초연인 '과부들'은 칠레 출신 아리엘 도르프만(70)이 시·소설·희곡으로 변주했던 문제작이다. 군부 정권의 폭력성을 고발하면서도 정치적 주장을 넘어 삶의 근본 조건을 돌아보게 한다. 제목은 '과부들'이지만 그들이 과부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편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실종됐을 뿐이다. 여인들은 차라리 '과부들'이라도 되기 위해 기다린다. 살아 돌아올 희망이 없다면 기다림의 종지부라도 찍고 싶다. 일상이 지옥이 되도록 끝내 포기하지 않는 질긴 기다림을 3시간 동안 함께하면서, 관객은 역설적으로 삶의 희망과 믿음의 근거를 만난다.

오현경·한명구 등 관록 있는 배우의 연기가 작품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간다. 채울 줄 몰라 비워놓고 '미니멀하다'고 강변하는 무대와 달리, 비어 있으면서 꽉 찬 무대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공연 기간이 열흘뿐이다. 여건상 재공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서둘러야 할 이유다.

▲1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813-1674

◇'글쎄요…' ― '그을린 사랑', 원작의 격정과 충격 어디로 가고

21세기 오이디푸스를 꿈꿨으나, TV 드라마스러운 '출생의 비밀'에 갇히고 말았다. 2시간30분 동안 장황하게 이어가다가 나머지 30분에 '충격적 진실'을 쏟아붓는다. 구슬픈 음악이 빨리 감동하라고 등을 떠민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운명의 장난이 주는 충격은 30년 전 예술연극도 아닌 오락영화 '스타워즈'에서 "내가 니 애비다!"라는 단 한 줄로 충분히 이뤘다. 캐나다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원작 희곡과 동명 영화가 그토록 놀라웠던 것은 단순히 혈연관계가 뒤집혀서가 아니다. 끔찍한 진실 앞에서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현실, 그토록 증오한 가해자도 결국 피해자이기에 돌을 던질 수 없는 가혹한 역사가 가슴을 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 '그을린…'에는 폭로만이 있을 뿐, 그를 떠받치는 맥락의 지렛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극의 상당 부분이 배우의 독백으로 전개된다. 사랑도, 살인도, 강간도 '입'으로 한다. 배우의 역량에 극의 성패가 좌우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호연을 보여준 이연규(늙은 나왈 역)를 제외하고, 일부 배우들은 객석까지 극의 파고를 밀어 보내지 못한다. 감정이 고조될 때의 표정과 나머지 모든 장면에 전천후로 쓰는 표정, 두 가지로 3시간을 버티는 배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