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까멜리아, 한국선 마지막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6.07 03:10 | 수정 : 2012.06.07 10:44

[강수진 '까멜리아' 15일 개막]
발레, 날마다 고통과 싸움… 그래도 참 단순하게 살았죠
저 TV 토크쇼에 나올거예요스… 스로에 솔직해야 그게 예술

이번이 마지막이다. 국내 발레팬들이 강수진의 '까멜리아 레이디'를 보는 것은. "전막(全幕)으로는 다시 공연하지 못할 거예요. 저희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내한하기도 쉽지 않고요."

5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강수진(45)은 '마지막'이라는 단어 앞에서 담담했다. 15일 개막하는 '까멜리아'의 국내 공연은 10년 만이다. 강수진은 2008년 내한 때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을 마지막으로 공연했다. 다가올 '그날'을 앞두고 하나씩 매듭을 지어가는 것일까. "은퇴는 기자들이 물어볼 때나 생각해요. 언제 할지 저도 몰라요. 하게 되면 하는 거죠. 그게 인생의 리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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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만난 발레리나 강수진은"지금 이 순간에 몰두해야 진실한 춤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마흔 이후, 인터뷰 때마다 은퇴 질문을 받아온 강수진이다. "멀리 계획해봤자 중요한 건 오늘이더라고요. 내일도 너무 멀어요. 지금 제게 제일 중요한 건 이 인터뷰를 잘 끝내는 것이죠. 그것만으로 저는 행복해요."

'까멜리아'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춘희'가 원작. 미천한 신분의 여성 마르그리트와 귀족 청년 아르망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다. 강수진은 마르그리트 역으로 마레인 라데마케르(아르망 역)와 선다. 두 사람은 기교와 완성도에서 '가장 슈투트가르트다운 커플'로 평가받는다. 17일 공연에는 2004년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한 강효정(27·마농 역)도 출연한다.

'까멜리아'는 강수진에게 특별하다. 1999년 그에게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오스카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안겨준 작품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발레는 찾기 어려워요. 비극적인 이야기가 쇼팽의 음악에 잘 녹아 있죠. 어느 발레리나든지 '까멜리아'를 했으면 죽어도 괜찮아요."

주변에서 '춤벌레' 혹은 '머신(기계)'이라고 부를 정도로 혹독하게 연습하는 그는 공연을 앞두고 온몸에 근육만 남아 있었다. 스몰 사이즈 원피스가 헐렁해서 사진 촬영 때는 옷핀으로 등 쪽을 집어줘야 했다. '다시, 또다시' 연습하는 강수진은 후배들에게 행운의 날개를 달아주기도 한다. 파트너 마레인은 2006년 강수진과 '까멜리아' 공연을 끝낸 직후 주역 무용수로 전격 발탁됐다. "제가 이 나이까지 발레를 할 수 있는 건 단순하게 살았기 때문이에요. 눈뜨면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일단 몸을 움직이고, 그러다 보면 싫다가도 하게 되고, 잘한다 싶을 때까지 밀어붙이게 되고요." 그렇게 살아온 30년은 하루하루가 자신과의 투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기분 좋다, 발레 많이 할래'라고 생각한 날이 몇 번이나 됐겠어요? 날마다 고통스럽죠. 끊임없는 싸움이고요."

2008년 그가 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자, 무용계 일부에서는 "발레리나 이미지를 망가뜨린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는 이번에도 TV 토크쇼에 출연할 예정이다. "실망하신 분들이 있다고요? 실망하셔도 돼요. 누구나 테이스트(기호)가 있으니까 존중해야죠. 전 방송 촬영하던 날 재미있었어요. 그거면 족해요. '발레리나니까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틀에 갇혀 있었다면, 이제까지 무용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일상에서나 무대에서나 늘 중시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으면 예술이 안 나와요. 겉으로만 무용하는 사람들 있어요. 그런 무용은 1분만 봐도 지루해요. 솔직하게 오늘을 살면 언젠가 '그날'이 닥치더라도 후회 없을 거예요."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 15~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577-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