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영혼을 불태우러 왔다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5.23 23:43

안무가 카르멘 모타 내한
스페인의 국보급 안무가 플라멩코는 미쳐야 추는 춤… 신작 '알마' 한국서 첫 투어

플라멩코의 전설적 무용수이자 연출가인 카르멘 모타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서 열정적인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그분'이 오셔야만 출 수 있는 춤이 있다. 일단 온 후엔 멈출 수 없는 춤, 플라멩코의 '영혼'이 여름 열기에 맞불을 지르러 다시 한국에 왔다. 신작 '알마(Alma·영혼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를 들고 방한한 '플라멩코의 여제(女帝)' 카르멘 모타(76)는 불붙은 듯 빨간 바지 정장을 입고 기자를 맞았다. 23일 개막을 앞두고 마무리 리허설 중이던 22일 공연장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뭔가에 불타고 싶고, 뭔가를 태우고 싶은 관객의 영혼을 꺼내주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답이건 시원하고 화끈했다. "불 질러보세요. 가슴에 감춘 것, 숨긴 것, 억누르지 말고!"

스페인의 국보급 안무가로 인정받는 그의 방한은 3년 만이다. 70년을 라틴 리듬에 바친 그는 손 한 번 뻗을 때에도 곧고 탄탄한 힘을 느끼게 했다. 3살 때부터 플라멩코 박자를 익히고, 7살 때 마드리드공원에서 밴드 반주에 맞춰 춤을 시작한 그는 16살 때 직업 무용수의 길로 들어섰다. '집시의 여왕' 카르멘 아마야를 사사한 후 1977년 자신의 이름을 건 무용단을 세웠다. 그가 플라멩코의 불꽃을 전한 나라는 27개국에 이른다.

그가 보는 플라멩코는 '미쳐야 추는 춤'이다. "잠자고 있던 희로애락을 분출시키는 게 플라멩코예요. 열정만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기쁨과 환희, 슬픔과 고독등 모든 감정이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정점으로 치솟는 진폭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이죠."

모타는 플라멩코 세계화를 위해 과감한 퓨전 안무를 선보여 왔다. 힘이 넘치는 군무(群舞), 라스베이거스 쇼에서 볼 법한 화려한 조명이 무대를 들썩인다. 이번 작품 '알마'에서는 흰 드레스 차림의 군무가 나온다. 빛이 일정 온도 이상에 이르면 희게 불타듯 정열의 정점에서 발산되는 순수한 빛을 몸으로 보여준다.

미쳐야 즐기는 춤을 들여온 사장님도 미쳤다. 공연 주최사인 더블유앤펀엔터테인먼트의 이병수 대표는 젊은 시절 스페인에서 플라멩코를 본 후, 아예 기획사를 차려 플라멩코 전도에 나섰다. 홍보가 만만치 않다는 직원들 앞에 "플라멩코와 함께 죽겠다"고 '결의문'까지 써 보였다. "공연 올릴 때마다 가진 걸 하나씩 팔았다. 집 팔고, 차 팔았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다."

모타는 이 대표의 열정에 탄복해 한국을 '알마' 세계 투어 첫 공연지로 선택했다. 아들 호아킨 마르셀로(47)는 수석 안무가로 함께 왔다. 모타는 "호아킨을 임신하고 7개월째까지도 플라멩코를 췄다"고 말했다. 호아킨은 8살 때 뇌척수막염으로 청력을 거의 잃었다. 그러나 뱃속에서부터 춤을 배운 덕인지 화려한 안무에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릴 때부터 이소룡의 영화를 좋아한 호아킨은 동양 무술의 절제와 균형에서 안무의 기본을 배웠다고 한다.

23일 개막 공연에서는 플라멩코 특유의 현란한 발구르기에 큰 박수가 쏟아졌다. 아무런 반주도 없는 정적 속에서 한 남성 무용수가 오로지 스텝만으로 관객 1000명의 호흡을 쥐었다 놓았다.

▲카르멘 모타의 '알마' 26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02)517-0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