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5.23 00:39
◇그림으로 그림 값 막기 악순환
미술계에서는 컬렉터에게 일단 작품을 보내고 대금은 나중에 받는 식의 '무리한 판매'가 홍 대표를 궁지로 몰아넣은 가장 큰 요인으로 보고 있다.
해외에서 사들인 고가 작품을 주요 고객에게 배달시킨 후 "일단 보고 마음에 들면 구입하시라"하는 방식은 홍 대표뿐 아니라 상당수 화랑이 공공연히 쓰는 판매 방법. 그러나 경기 침체로 컬렉터들이 그림을 돌려보내거나 결제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지자 그림을 담보로 돈을 빌려 그림 값을 치르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술계 인사 A씨는 "화랑에서 '작품 값이 오르지 않으면 원금을 내가 보장하겠다'식으로 그림을 파는 경우가 있다. 작품을 되사주기 위해 대출받고, 대출 이자를 갚으려 또 대출받는 식이 반복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 해외 유명 작가와 직접 거래하는 화랑은 송금 시점을 비교적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으나, 홍 대표의 경우 국내 지명도와는 달리 '직거래' 루트가 별로 없이 중간 에이전트(agent)를 통해 바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사들여 자금부담이 가중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홍 대표는 최근까지도 빚을 갚느라 허덕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술계 인사 B씨는 "오리온 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홍 대표가 작년 10월 출소 후 작품 바겐세일을 했다. 이번에 출국할 때도 '옥션에서 그림 팔아 빚 갚아야 한다'며 나갔다"고 말했다.
◇定價 없고 소유권 추적 힘들어
이번에 문제가 된 미국 추상화가 사이 톰블리의 그림 '볼세나'와 박수근의 '두 여인과 아이' 등은 서미갤러리가 미래저축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는 데 이용된 후, 홍송원씨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소유권이 미래저축은행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찬경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하나캐피탈에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은 것이다. 당시 하나캐피탈이 그림의 소유권자를 누구로 알고 있었는지가 사건의 쟁점. 만일 김 회장이 "내 소유다"라고 했다면, 회사 재산을 횡령한 셈이다.
그림은 정가(定價)도 없고, 세금도 붙지 않으며, 보관하기가 쉽다. 그런데 환금성은 높다. '등기부등본'이 없으니 담보 설정·소유권 여부를 알기 힘들고, 담보가액도 자의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 대형 비리 사건에 미술품이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