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VIP석 없애… '옥상옥 티켓' 사라질까?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5.16 03:22 | 수정 : 2012.05.16 20:56

로열석 'R' 레귤러석으로 전락 - R석 위에 VIP·VVIP·P석… 공연마다 좌석 기준 달라 혼란
예술의전당 "R이 최고석" - 6단계 표준 좌석등급제 도입, 일부 "티켓 값만 오를 수도" 우려

지난해 12월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를 관람하기 위해 공연 예매 사이트를 방문했던 회사원 김모(35)씨는 예술의전당의 좌석 분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극장 1층 중앙의 272석이 모두 35만원짜리 P석(프레지던트석)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양옆의 260석은 또다시 29만원의 VIP석이 차지했고, 과거 가장 비싼 좌석을 뜻했던 R석(로열석·22만원)은 1층 가장자리와 맨 뒷자리로 아예 밀려나 있었다. 김씨는 "좋은 자리인 줄 알고 R석을 구입했는데 막상 구석이나 뒤에 앉아야 한다면 '로열석'이 아니라 '레귤러(보통)석'으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VIP석뿐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유명 성악가의 내한 독창회에서는 가격이 적혀 있지 않은 VVIP석(141석)이 등장했다. 오는 7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주최사는 P석(40만원)과 VIP석(33만원)을 책정했다가, 예술의전당의 요청으로 좌석 등급의 명칭을 각각 VIP석과 R석으로 바꾸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처럼 최근 공연계에서 '옥상옥(屋上屋)'으로 생겨나고 있는 좌석 등급 인플레를 참다못한 예술의전당이 강력한 제재에 나서기로 했다. 모철민(54) 신임 예술의전당 사장은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간담회를 갖고 "공연 주관사에서 임의로 고가의 티켓 등급을 책정해서 관객 입장에서는 도무지 가격을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공정 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차원에서라도 극장장부터 나서서 P석과 VVIP석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모 사장은 "앞으로는 R·S·A·B·C·D석 등 6단계 표준 좌석 등급제를 실시하고, R석 숫자도 800~900석(콘서트홀 기준 32~36%)으로 제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획사나 공연 단체에서 공연장을 대관해서 주최하는 외부 공연에 대해서도 그는 "지키지 않을 경우 대관을 승인하지 않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좌석 등급 지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예술의전당이 '강경책'을 꺼내든 셈이지만, 공연계 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공연 기획사 A대표는 "소비자들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좌석 등급 책정을 투명화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환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좌석 등급을 제한할 뿐, 민간 기획사와 단체가 주도하는 공연의 티켓 가격 책정에 대해서는 예술의전당이 개입할 방도가 없다. 이 때문에 또 다른 티켓 가격 인상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민간 오페라단 B대표는 "새로운 좌석 등급을 만들 수 없다면 기존 좌석 등급의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은 이날 표준 좌석 등급제 외에도 ▲청소년 회원 가입 연령의 상향 조정(기존의 19세에서 24세) ▲공연 당일까지 팔리지 않은 좌석에 대해 당일 할인 판매 제도(가칭 '스탠바이 티켓') 도입 등 공공성 강화를 화두로 내걸었다. 예술의전당의 이번 조치가 낡은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지, 티켓 가격의 인플레이션 요인이 될지 공연업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