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도의 눈물을 짠 '빨래'

  • 도쿄=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5.15 23:28

뮤지컬 '빨래' 도쿄 앙코르
무대·소품 모두 '한국식'대로… 희망 잃지 않는 서민 이야기 日관객들 공감·감동 이끌어

13일 도쿄‘빨래’공연장에서 만난 솔롱고 역 노지마 마요토(왼쪽)와 나영 역 노로 가요. /도쿄=신정선 기자 violet@chosun.com
다닥다닥 판잣집, 붉은 궁서체로 '쌀'이라 써 붙인 '국제수퍼', 위층에는 '십일조교회'. 서울 산동네에서 흔히 만나는 골목 풍경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서울구라시난넹데스까~'. 서울살이가 몇 해나 됐는지 노래하는 그들, 서울 사람이 아니고 일본 배우들이다.

최근 거세지는 한국 뮤지컬 일본 진출 열풍의 선두에 선 '빨래'(작·연출 추민주)가 지난 11일 도쿄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빨래' 외에도 약 10편이 내년 초까지 일본에 건너갈 예정이다. 라이선스로 수출된 창작뮤지컬 '빨래'는 동시대 한국의 현실과 정서 그대로 정면 승부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과연 현지 반응은 어떨까? 앙코르 사흘째인 13일 오후 1시, 도쿄 롯폰기 하이유좌(俳優座) 극장(300석 규모)을 찾았다. 1950년대 지어진 극장 로비에서는 화환 수십개가 관객을 맞는다. 걸그룹 AKB48 출신인 배우 노로 가요(野呂佳代·주인공 나영 역)를 위해 팬들이 보낸 선물이다. '빨래'는 강원도에서 상경한 나영이와 몽골 이주노동자 솔롱고가 서울에서 고통과 눈물을 헹구고 새날을 맞는 희망과 위로를 진하게 그린다. 2월 4~16일 도쿄 미쓰코시(三越)극장에서 초연해, 17~18일 오사카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번 앙코르는 20일까지. 제작사 수박의 최세연 이사는 "손빨래가 낯선 일본 배우에게 빨래 짜는 것부터 가르쳤다"고 말했다.

일본 공연 입장료는 평균선인 7000엔(약 10만원). 표 값에 따른 좌석구분은 없다. 머리숱이 드문 중년 남성, 파마를 한 20대 여성, 머리가 하얗게 센 노년 부부 등 다양한 관객이 자리를 메웠다. '빨래'는 원형 그대로 일본 무대에 섰다. 이른바 '레플리카'(replica) 방식. 제목에 한글을 살렸고(일본어 표기 '파루레'), '안녕'과 '빨래'라는 단어도 대사 중에 나온다.

일본에 라이선스 수출된‘빨래’의 현지 공연 장면. 제목과 무대 등 국내 공연을 그대로 살렸다. /퓨어마리 제공
'빨래'의 일본행은 일본 제작사 퓨어마리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퓨어마리 대표 호사카 마리코(保坂磨理子)와 연출가 스즈키 다카히로(鈴木孝宏)는 극단 시키(四季) 출신. 호사카 대표는 "작년 2월 '빨래'를 꼭 보라는 지인의 추천을 받았는데, 한국 작품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곧바로 추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3월 대지진이었다. 연출가 스즈키는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던 차에 호사카 대표와 함께 한국에서 '빨래'를 보고 한 대 얻어맞은 듯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스즈키는 "'빨래'의 희망차고 청정한 기운이 일본 관객에게 공감을 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한계도 없지는 않다. 장애를 가진 딸을 둔 주인 할매가 '더러운 빨래도 살아 있으니 나오는 것, 빨래의 고통은 삶의 고통이니 달게 받겠다'고 노래하는 장면 등은 정서 전달에 깊이가 다소 떨어졌다. 현재까지 객석 점유율은 85~90% 정도. 유료 점유율은 40%라고 퓨어마리 측은 밝혔다.

솔롱고 역의 노지마 마요토(野島直人)는 팬들이 노징고(노지마+솔롱고)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는 "반응이 없기로 유명한 일본 관객이 소리 내 웃고 박수를 크게 쳐줘서 기운이 났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 후 관객 나카이 치에(30대·교사)는 "울고 있는 나영을 달래주는 장면 등 서로 위로해주는 장면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빨래' 연출가 추민주씨는 "8월 22~27일 도쿄 재공연이 확정됐다"며 "2년 후에는 일본 전국 투어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