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5.10 00:09
6년전 중계 시작, 비아냥 들어 - 이젠 전 세계 295만명이 자국 극장서 HD 화면 관람
개혁 사령탑은 겔브 총감독 "고급문화도 생존과 싸워야"

미국 '오페라의 1번지'로 꼽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메트)은 2006년 전 세계의 영화관을 통해 오페라를 중계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수적인 평단에서는 "팝콘을 씹으면서 오페라를 보라는 말이냐"며 비아냥거렸다. 그럴 만했다. 전통적으로 아날로그와 고급문화의 영역에 속하는 오페라와 디지털과 대중문화로 무장한 영화 사이에 접점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배반했다. 그해 세계 8개국에서 32만5000여명의 관객으로 출발한 메트 오페라의 영화관 중계는 올 시즌 54개국의 295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세계 영화관을 통해 '해가 지지 않는 오페라 제국'을 건설한 셈이다. 그 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한 사령관이 피터 겔브(58) 메트 총감독이다.
겔브는 뉴욕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광범위한 대중의 관심을 잃지 않기 위해 21세기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은 옛 작품인 데다 공연 시간마저 길어서 장애물이 적지 않다. 세상과의 긴장을 잃으면 관객이 사라지거나 표류하기도 쉽다"고 말했다.
2006년 그의 취임 이후, 메트는 24시간 오페라를 방송하는 라디오 채널을 출범하고 공영 TV를 통해 오페라 중계방송을 활성화하는가 하면, 세계 각지의 영화관을 통해 오페라 중계를 시작했다. 극장 안에 설치된 10대의 HD 카메라로 포착한 오페라 공연은 6개의 위성을 통해서 세계로 중계된다. 북미와 유럽은 생중계, 시차가 있는 아시아·호주 등은 녹화중계한다.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이달 중 메가박스에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과 간디의 삶을 다룬 필립 글래스의 오페라 '사티아그라하' 중계가 마련되며, 서울 삼성동 베어홀에서는 해설을 곁들인 오페라 하이라이트 감상회가 열린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배반했다. 그해 세계 8개국에서 32만5000여명의 관객으로 출발한 메트 오페라의 영화관 중계는 올 시즌 54개국의 295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세계 영화관을 통해 '해가 지지 않는 오페라 제국'을 건설한 셈이다. 그 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한 사령관이 피터 겔브(58) 메트 총감독이다.
겔브는 뉴욕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광범위한 대중의 관심을 잃지 않기 위해 21세기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은 옛 작품인 데다 공연 시간마저 길어서 장애물이 적지 않다. 세상과의 긴장을 잃으면 관객이 사라지거나 표류하기도 쉽다"고 말했다.
2006년 그의 취임 이후, 메트는 24시간 오페라를 방송하는 라디오 채널을 출범하고 공영 TV를 통해 오페라 중계방송을 활성화하는가 하면, 세계 각지의 영화관을 통해 오페라 중계를 시작했다. 극장 안에 설치된 10대의 HD 카메라로 포착한 오페라 공연은 6개의 위성을 통해서 세계로 중계된다. 북미와 유럽은 생중계, 시차가 있는 아시아·호주 등은 녹화중계한다.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이달 중 메가박스에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과 간디의 삶을 다룬 필립 글래스의 오페라 '사티아그라하' 중계가 마련되며, 서울 삼성동 베어홀에서는 해설을 곁들인 오페라 하이라이트 감상회가 열린다.

겔브는 "세계 최고의 지휘자와 성악가들이 메트 무대에 서고 있지만, 극장 좌석은 3800여 석뿐이다.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메트의 예술적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현대 문화의 다양한 조류와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트의 최근 자체 조사에 따르면 영화관을 찾은 관객 가운데 60%는 기존 오페라 관객이지만, 40%는 처음 오페라를 접한다고 답했다.
성악가들은 자신의 노래가 실시간으로 세계에 전파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겔브는 "이미 메트의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압력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그 압박마저 자신의 예술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성악가들은 자신의 노래가 실시간으로 세계에 전파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겔브는 "이미 메트의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압력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그 압박마저 자신의 예술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겔브는 잇따른 오페라의 개혁 작업 때문에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로부터 '오페라의 혁명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겔브는 "예전에는 클래식 음악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경제 위기 속에서 적잖은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이 문을 닫거나 파산할 위기에 처해 있다. 세상은 오페라에 친절하지 않으며, 우리는 생존을 위해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겔브는 뉴욕 타임스의 편집인을 지낸 아서 겔브(88)의 아들이다. 공연 담당 기자와 문화부장을 지낸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섯 살 때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보았던 것이 그의 첫 극장 경험이었다.
겔브는 "당시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 아니라 성인 버전이었으니, 아마도 그때 더 똑똑했던 것 같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을 얻는 대신, 지능을 잃는다"면서 웃었다. 고교 시절에는 2년간 메트에서 매주 2차례씩 좌석 안내원으로 일했다. 고교생 안내원이 40년 뒤에는 극장 운영의 책임자로 변신한 것이다. 보스턴 심포니와 콜롬비아 아티스츠 매니지먼트(CAMI)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쳐서 메트에 합류했다. 그는 "예술이 변화하면 장기적으로는 사회와 문화 전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나는 아직 낙관주의자"라고 말했다.
겔브는 뉴욕 타임스의 편집인을 지낸 아서 겔브(88)의 아들이다. 공연 담당 기자와 문화부장을 지낸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섯 살 때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보았던 것이 그의 첫 극장 경험이었다.
겔브는 "당시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 아니라 성인 버전이었으니, 아마도 그때 더 똑똑했던 것 같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을 얻는 대신, 지능을 잃는다"면서 웃었다. 고교 시절에는 2년간 메트에서 매주 2차례씩 좌석 안내원으로 일했다. 고교생 안내원이 40년 뒤에는 극장 운영의 책임자로 변신한 것이다. 보스턴 심포니와 콜롬비아 아티스츠 매니지먼트(CAMI)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쳐서 메트에 합류했다. 그는 "예술이 변화하면 장기적으로는 사회와 문화 전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나는 아직 낙관주의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