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에 목마름 투박·박력까지 다시 청하고 싶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5.10 00:21

[리뷰] 경기필의 바그너 갈라 콘서트

호쾌한 바그너의 관현악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을까. 8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바그너 갈라 콘서트는 '스타 캐스팅'없이 지휘(구자범)와 연주(경기 필하모닉), 합창(수원·안양·의정부시립합창단, 인천오페라합창단, 그란데오페라합창단)까지 순수 제작이었지만 객석에선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국내 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 좀처럼 바그너를 연주하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 체질적 허약성의 방증이기도 하다.

무대 위 오케스트라 108명과 무대 뒤 합창석에 도열한 170명의 합창단원까지 '블록버스터'의 편성이 내뿜는 열기에는 절제되지 않은 야성이 가득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탄호이저', '파르지팔'과 '로엔그린' 등 바그너의 주요 오페라 가운데 관현악과 합창곡을 이어서 연주한 이날 음악회에서 악단은 유려하고 섬세하기보다는 투박하면서도 박력 있는 편에 가까웠다. 강약이나 박자를 정치(精緻)하게 다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지휘자는 굳이 절제하기보다는 시종 대담하게 몰아붙이는 편을 택했다. 주지주의(主知主義)라기보다는 주정주의(主情主義)에 가까운 접근이었다.

말러(정명훈·임헌정·정치용)와 브루크너(박은성) 등 후기 낭만주의 교향악의 준령에 도전한 지휘자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바그너는 그동안 국내 악단에 심리적 저지선으로 암암리에 간주됐다. 이날 연주에 대해서도 의욕 과잉이라는 비판이 가능해 보였지만, 사실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호기(豪氣)가 필요한 법. 이날 5개 연합 합창단의 목소리는 다시 청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취향이나 입장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나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논쟁적인 연주회였다. 하지만 이런 콘서트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정례화했으면 하는 바람 역시 간절했다. 바그너의 음악을 즐기는 것이 인종주의나 반(反)유대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과도한 의미 부여나 객쩍은 농담을 나열한 해설집은 '옥에 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