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아마데우스 OST 연주한 그 악단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5.10 00:12

소편성과 현대악기로 바로크·고전파 작품 섭렵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SMF)

"용서해주게, 모차르트. 자넬 죽인 건 날세."

하인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온통 피범벅이 된 채 방에 누워 있습니다. 피터 셰퍼의 원작을 바탕으로 8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영화 '아마데우스'의 첫 장면입니다. 살리에리가 병원으로 실려가는 가운데,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 1악장이 흐르면서 긴박감을 더욱 높입니다. 좀처럼 잊을 수 없었던 이 선율을 연주한 주인공이 지휘자 네빌 마리너와 악단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사진)입니다.

영국의 이 실내악단이 다소 복잡한 이름을 갖게 된 건 1959년 창단 당시 연주장소가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부르기 불편했던지, 최근에는 간단하게 머리글자를 따서 ASMF라고도 부르지요.

소편성의 현대 악기로 주로 바로크와 고전파 작품을 연주했던 이들은 당시 영국에서 고음악 바람이 불면서 최강의 '녹음 기계'로 급부상했습니다. 1969년 비발디의 '사계' 음반과 1984년 영화 '아마데우스'가 히트하면서 지금까지 무려 500여 종의 음반을 발표했지요. 세계 체임버 오케스트라 가운데 최다 녹음 기록으로, 1993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수출 공로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휘자가 일방적으로 군림하기 쉬운 대형 오케스트라와는 달리, ASMF는 리허설에서도 단원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영국식 의회주의' 전통을 세웠습니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와 필립 피켓 같은 지휘자들을 배출하면서 영국 바로크 음악의 요람으로 불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바로크 음악은 현대 악기가 아니라 작곡 당대의 악기와 연주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대 연주' 단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1980년대 ASMF는 일종의 정체성 위기를 겪었습니다. 바로크 연주 단체들이 마치 근본주의 단체처럼 원리 원칙을 곧이곧대로 따지고 들자, 현대 악기로 옛 음악을 연주하던 ASMF 같은 절충주의적 단체들은 상대적으로 입지가 줄어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사운드트랙 녹음에 참여하면서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고,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와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과 협력하면서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요. 결국 조슈아 벨은 지난해 이 악단의 새로운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창단 52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오는 27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협연 손열음), 교향곡 39번으로 돌아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가 선사했던 모차르트 음악의 짜릿한 감동도 여전할까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내한 공연, 27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