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의 자유 영혼, 팔색조 렘퍼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5.02 23:33

[현대음악·뮤지컬·영화 넘나드는 '전천후 예술가' 우테 렘퍼 내한 공연]
노래·무용·연기 "예술 혼돈에 도전"
유대인 작곡가 바일 曲 불러 명성… 음악, 그녀에겐 장르·국경도 없다

지난해 파리 샹젤리제 극장. 짙은 어둠이 깔린 무대 위에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악기인 반도네온과 피아노만이 단출하게 놓여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반도네온의 탱고리듬에 맞춰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섞인 허스키한 음성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독일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인 우테 렘퍼(48)가 목소리의 주인공. 때로는 신경질적 음성, 때로는 관능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로 그는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독일의 카바레 음악, 프랑스의 샹송을 경계 없이 넘나들었다. 창공을 나는 새의 비상을 노래할 때에는 두 손으로 새의 퍼덕거림을 표현했고, 객석의 청중과 함께 휘파람을 부르거나 피아노 위에 올라가서 노래하는 특유의 장기도 빼놓지 않았다.

20세기 현대 음악과 뮤지컬, 영화를 넘나드는 전천후(全天候) 예술가인 렘퍼가 다음 달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그는 독일계 유대인 작곡가 쿠르트 바일(1900~1950)의 음악을 재조명한 가수이며, '캐츠'와 '카바레' '시카고' 등에 출연했던 뮤지컬 배우다. 디즈니의 만화 영화 '인어공주'에서는 여주인공 역을 독일어로 더빙했고,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 '패션쇼'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임신한 몸으로 누드로 출연했던 배우이기도 하다.

쇳소리 섞인 허스키 음성으로 현대음악, 뮤지컬, 영화 등 여러 예술 장르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온 전천후 예술가 우테 렘퍼의 공연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모국어인 독일어와 영어, 불어와 스페인어, 동유럽계 유대인의 이디시어(語)까지 구사하면서 그는 모든 예술 장르를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렘퍼는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예술에서 모호함과 혼돈은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껴안아야 하는 것"이라며 "도전은 언제나 나를 자극하며, 나는 독일인인 동시에 유럽인이며 세계 시민"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렘퍼는 달러(미국)와 파운드(영국), 프랑(프랑스)과 리라(이탈리아), 페소(아르헨티나)가 담긴 지갑 5개를 갖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공연했다. 그는 "유럽 화폐 통합으로 지금은 지갑이 하나로 줄었다"고 했다.

이 음악의 세계주의자(cosmopolitan)는 출발부터 범상치 않았다. 10대 시절에는 새러 본과 칙 코리아의 재즈와 조니 미첼의 포크 음악, 핑크 플로이드의 록 음악이 렘퍼를 사로잡았다. 쾰른의 무용 전문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방학마다 빈으로 달려가서 연극 과정을 수강했다. "노래가 목소리의 표현이라면 무용과 연극은 몸짓의 표현이었다. 그 모든 걸 배우고 싶었다"고 렘퍼는 말했다.

무용과 연기, 노래의 결합은 응당 뮤지컬이었다. 그는 빈과 파리, 뉴욕에서 뮤지컬 작품에 출연했고, 1987년 쿠르트 바일의 노래를 음반으로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바일은 독일에서 브레히트와 급진적인 음악극을 공동 작업했으며, 나치 집권 이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뮤지컬의 반석을 놓았던 작곡가다. 예술 음악과 대중음악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바일의 매혹적이면서도 모호한 정체성은 렘퍼와도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렘퍼는 "나치 집권 이전의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에는 예술도 급진적이고 불온하면서도 퇴폐적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나치에 의해 사라졌다. 모순으로 가득한 독일의 현대사와 마주하면서 나는 음악적 자유를 얻었다"고 말했다.

쿠르트 바일의 '서푼 짜리 오페라' 가운데 유명한 '칼잡이 매키'와 뮤지컬 '시카고'의 '올 댓 재즈(All that jazz)'가 그녀의 무대에서는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장르도, 국경도 없는 그의 음악 세계에서 최종 정착지는 어디인지 묻자, 렘퍼는 주저 없이 답했다. "내 삶은 끊임없이 넘기는 책의 페이지와도 같다. 다음 페이지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우테 렘퍼 첫 내한 공연, 6월 10일 오후 7시 LG아트센터,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