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4.23 03:05
"전 제 삶을 살아야 했어요… 이기적인 거죠, 굉장히 이기적인"
'이효리 될래?'물으면 '노'… 배우는 방울만 안 든 무당, 연극 못하면 나는 죽을 것
"아직도 관객의 마음 몰라… 무대 내려오면 허무감보다 짐을 덜어낸 것 같은 기분"
무대에서 음산하게 들리는 중성(中性)의 목소리만 빼면, 연극배우 박정자(70)씨는 소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눈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광경에 곧잘 감탄하고 말도 예쁘게 꾸몄다. 쟁반에 구슬 구르는 웃음까지도 가끔 터뜨렸다.
―노역으로 지금에 이르렀으니, 젊었을 때는 젊음이 없었고….
"일찍부터 늙었으니 이제는 거꾸로 젊어지고 있죠."
그는 연기 인생 50년을 맞았다. 이화여대 재학 시절인 1962년 연극 '페드라'(어머니가 의붓아들을 사랑하는 내용의 신화)로 데뷔했다. 왕비의 시녀역이었다.
"마음에는 늘 연극이 있었어요. 연극을 처음 본 게 아홉 살이었는데, 6·25 나던 해였어요. 아주 드문 경우죠. 작고한 오빠가 극단 '신협'의 연구생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죠. 그때 연극을 안 봤으면 오늘의 연극배우 박정자는 없었을 겁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남들 앞에 서서 박수받는 걸 좋아했어요."
"그럼요. 그건 운명이니까요. 관객의 반응이 없으면 배우 노릇을 할 수가 없어요."
―선생은 요즘도 연극표를 갖고 다니며, 지인들을 만나면 판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호시탐탐(虎視眈眈) 기회를 보죠.(웃음) 누군가가 표 100장을 사준다고 하면, 그 사람 혼자 객석에 앉혀놓고도 연극을 할 거예요. 관객이 없어 막을 못 올리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아요."
―선생의 연극에도 객석이 비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저도 아픔을 많이 겪었지요. 몹시 추운 날이었어요. 죽은 사람의 콧김만도 못한 난로 하나 놓고 우리 배우들이 분장을 하고 있었지요. '사랑과 위선의 흥정'이라는 프랑스 코미디라 노란 가발을 쓰고 의상도 근사했죠. 문제는 관객이 6명이라는 거예요. 세 쌍이었어요. 배우는 13명이 나오는데. '차라리 분장실로 초대해 얘기나 나누자'고 하다가, '그건 연극 정신에 위배된다'며 무대에 섰지요. 그날 굉장히 열정적으로 연기했어요. 커튼콜을 할 때 관객들에게 우리가 분장실에서 나눴던 얘기를 고백했어요."
―흥행이 될지 안 될지 직감이 안 옵니까?
"1970년 명동국립극장에서 최인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했어요. 정말 향기로운 작품이었죠. 공들여 준비도 했고요. 그런데 관객이 너무 없었어요. 공연이 끝나고서 무대에서 발을 뻗고 통곡했어요. 두 해 뒤 다시 이 작품을 올렸는데 관객이 장사진을 이뤘어요. 전 아직도 관객 마음을 몰라요. 그건 미스터리예요. 어떤 작품을 관객들이 좋아할까. 연습할 때는 몰라요. 막(幕)을 올려야 압니다. 연극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이에요."
―연극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배우는 방울만 안 들었지 무당이지요. 작품 속 인물이 살아나온 것처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니까요. 배역에 따라 인간의 여러 모습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밑바탕에 깔린 모순(矛盾)이 드러나죠. 관객들은 배역의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겠지요."
―연극은 '일회성'이지요. TV나 영화와는 달리 한번 막이 내리면 끝입니다. 허공 속에 사라지죠. 포스터 정도밖에 남지 않겠죠. 그런 일회성의 허무를 어떻게 감당합니까?
"무대에서 내려오면 허무감보다, 저는 짐을 덜어낸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을 느껴요. 그러면 또 져야 할 다음 짐이 기다려요. 연극의 기쁨이란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있을 때 잠시였고, 항상 짐으로 생각됐지요."
―그 짐을 스스로 졌다면, 스스로 안 질 수도 있지요?
"연극밖에 할 줄 모르니까요. 과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하여튼 나는 연극밖에 없으니까요."
―우리 삶도 이처럼 일회성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나요?
"그것도 봄꿈 같은 것, 한바탕 꿈이라고 보지요. 저 꽃들도 얼마 머물러 있지 않잖아요. 저는 있는 동안 꽃피우고, 관객들이 '잘 피었다'고 봐주면 되죠."
―TV나 영화는 복제되고 전파됩니다. 연극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날 수 없지요. 과연 대중적 예술 장르가 될 수 있을까요?
"그 한계가 비극적이지만은 않아요. 연극에서는 관객들을 직접 만나니까 진정성과 설득력이 있죠."
―대중은 '이효리'는 다 알지만, 평생 연극을 해온 박정자는 잘 모릅니다. 선생의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다수이겠지요.
"저는 이효리가 진짜 귀엽고 예쁘지만, 이효리가 부럽지 않아요. 제게 '이효리 될래?' 물으면 '노'라고 하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성은 '돈'과 관계되죠.
"그렇지요. 연극판에 발 딛는 순간부터 늘 빵 문제를 걱정해야 하니까요."
―선생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家長)이었다면 이렇게 50년간 연극을 계속 해올 수 있었을까요?
"운이 좋았죠. 만약 가장이었다면 얼마나 불행했을까 생각해요. 다행히 책임을 져주는 남편이 있었고, 시부모님도 계셔 큰 울타리가 돼주셨어요. 저는 아내, 어머니, 며느리로서는 자격이 없죠. 모든 사람이 '너는 무대에서 실컷 놀아봐라'며 저를 놓아줬기 때문에 연극만 하고 살 수 있었죠."
―훌륭한 남편을 만난 거죠?
"(뜸을 들이다가 미약한 목소리로)예, 그럼요. 아이들 교육에 더 신경 써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은 있죠. 하지만 저는 제 삶을 살아야 했어요. 굉장히 이기적인 거죠. 아주 이기적이죠."
―과거 인터뷰를 보니 그런 남편을 두고 "이혼은 생각해봤지만 연극은 관두고 싶은 적이 없었다"고 했던데요.
"남편과 이혼하는 것은 모든 여자가 몇 번쯤 생각해보는 거예요.(웃음) 저는 연극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호흡 곤란을 일으킬 것 같아요."
―형편이 어려워도 광고 출연은 꺼린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광고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출연료로 자동차 기름도 넣을 수 있을 텐데. 1980년대 초 CF 감독인 남편이 화장품 광고를 찍는데 제게 녹음하라는 거예요. 제 목소리는 무겁거나 무섭죠. 그런데 화장품 광고라니. '헬레나 루빈스타인, 여성의 아름다움은 과학으로 만든다' 이 목소리가 방송에 나가면서 화제가 됐어요. 그 뒤 가끔씩 목소리로 출연했어요. 그런데 제 광고 목소리를 정말 들으신 적 있나요?"
―물론 들은 적이 있지요.
"제 목소리와 비슷한 성우 후배가 있어요. 아마 이 목소리를 들었을지 모릅니다. 어느 날 제가 하지 않은 광고인데 제 목소리가 들려요. 소름이 끼쳤어요. 제 목소리보다 더 제 목소리 같아요. 웃을 일만은 아니에요. 조영남 콘서트의 광고 녹음도 이 친구가 했어요. 한 선배가 '당신은 명색이 예술원 회원인데 조영남 콘서트까지 광고하느냐'며 전화를 걸어왔어요."
―광고주로서는 똑같은 목소리인데 선생은 몸값이 비싸니.(웃음)
"저도 비싸지 않아요."
―연극판에 막 들어오는 젊은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가엾죠. 요즘 세상에서 끼니를 걱정해야 할 운명이니까요. 그럼에도 대학의 연극학과에 지원하는 학생이 많아요. TV나 영화로 가기 위해서도 연극은 필요한 통로죠."
―선생 입장에서는 TV나 영화로 가는 연극배우들이 어떻게 보이나요?
"제가 '천년학' 영화를 보니 연극배우가 많이 나와요. 참 기분이 좋았어요. 출연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좋고. 연극을 하면 연기하는 자기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영화를 찍으면 스크린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보는 기쁨도 있겠지요. 그래서 임권택 감독에게 '연극하는 후배를 많이 출연시켜줘 고맙다'고 했어요. 영화에 가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와요."
―선생도 영화에 출연한 적 있지요?
"김기영(金綺泳) 감독이 어느 날 제의해 '충녀(蟲女)' '육체의 약속' 등 10편쯤 했어요. 저는 영화를 좋아해요. 하지만 제게는 연극이 훨씬 더 매력 있어요."
―영화는 본인에게 안 맞았나요?
"저는 영화의 '문법'이 익숙하지 않아요.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흘러가요. 몇 달간 연습도 그렇게 하지요. 우직하고 무식한 작업이에요. 하지만 영화는 이 장면 찍다가 저 장면 찍고 어느 날 라스트 신도 찍어요. 그런데 얼마 전 영화에 출연했어요. 바야흐로 봄이라 오랜만에 나들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첫 촬영을 했는데 다른 배우들 보기에 좀 부끄러웠어요. 영화에서는 여전히 신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 인터뷰를 보니, 선생은 본인이 출연한 연극에 대해서는 '당시에 정말정말 잘했다'고 말하더군요.
"그게 엉뚱한가요?"
―그때는 내가 좀 미흡했다고 해도 될 텐데.
"지나간 시간의 연극은 누구도 볼 수 없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죠.(웃음) 사실 작품마다 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무대에서 연기하는 나를 또 다른 내가 바라볼 때가 있어요. '박정자 너 참 잘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 묘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요. 3차원이라 해도 좋겠고. 정말 놀랍고 생경하죠."
―연기는 나이 들수록 성숙해지는 걸까요?
"성숙해진다는 말은 맞지 않고. 군더더기가 좀 없어져요. 치기와 과장을 벗고, 좀 더 자유로워진다고 얘기할 수 있지요."
―50년을 했으니 이제는 무대가 만만하죠?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여전히 떨려요. 대사를 까먹는다든가, 무대에서 실수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어요. 일단 무대에 서면 관객의 눈을 응시해요. 대부분 관객은 겁이 나거나 민망해서 시선을 돌려요. 하지만 어떤 관객은 눈싸움하듯이 딱 마주 봐요. 공연 때마다 그런 관객을 찾죠. 오로지 그 눈만을 보면서 저는 공연해요. 연극은 항상 라이브이지요. 이건 전쟁터예요."
그는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따라지의 향연' '에쿠우스' '대머리 여가수'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파우스트' '신의 아그네스' '뮤지컬 넌센스' '나이트 마더' '피의 결혼' '19 그리고 80' 등 지금까지 130여편에 출연했다.
―최고의 연극은요?
"최고의 연기 순간은 있어도, 완벽한 작품은 없어요. 다만 마음에 가장 드는 작품이라면 '19 그리고 80'이에요. 40대 때 그 작품을 만났죠. 다른 배우가 공연하는데 객석에 앉아 끝나도 일어나질 못했어요. 내가 나이를 더 먹으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다가 63세 때 했어요. 내 나이와 굉장히 닮아있고 앞으로도 80세까지는 하겠죠."
연기 인생 50년의 '박정자전'은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내달 4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그의 의상·사진·포스터·초상화가 전시되고, 장사익·최백호·강부자·전수경·배해선·유열씨 등이 돌아가며 출연료 없는 공연을 한다.
―이 출연자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제 친구들이죠."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됩니까?
"저와 친구 하실래요? 연극을 같이 보면 됩니다."